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역모가 아닌 다음에야 궁에 칼을 들고 들어온다는 것은 말이안되지요. 다만 1895년(고종 32년) 을미사변당시 일본인들은 궁에 칼을 들고 쳐들어와 명성왕후를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고 고종은 명성황후처럼 자신도 언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경복궁을 수시로 탈출합니다.
실제 침입 사례로는 정조의 친위 군영 설치는 1777년(정조 1) 궁궐의 정조 처소인 존현각(尊賢閣)에 자객 침입 사건이 일어나면서 명분을 얻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조는 호위 부대인 1777년 11월 숙위소(宿衛所)를 설치했으며, 이는 뒤에 장용위, 그리고 장용영 설치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