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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27

야인시대에 오물난동사건에 대해 알고싶어요

야인시대보다보니까 궁금해졌는데요? 1966년 국회 에서의 의송 김두한 국회 의원의 오물 난동이 국내적으로 어떠한 화제거리 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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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회오물투척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국회 오물투척사건은 1966년 9월 22일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의가 진행 중이던 국회 본회의에서 김두한 의원이 오물(인분)을 국무위원 및 장관들에게 투척한 사건입니다.

    1966년 9월 15일 경향신문을 통해 사카린 밀수 사건이 폭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1966년 5월 24일, 국내 굴지의 재벌인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 주식회사가 사카린의 원료 58톤을 건설 자재로 위장해서 밀수한 사건입니다. 6월 초에 벌금 추징으로 일단락되었으나,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가져온 데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밀수'를 '5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해놓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삼성 소유의 중앙매스콤과 경쟁 관계에 있던 여타 언론들이 이 사건을 호재로 삼아 연일 대서특필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자극했다는 점 등이 작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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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굴뚝새46
    노란굴뚝새4623.09.27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두한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 아버지가 만주에서 독립군사령관으로 활동하다보니 배움도 짧았고 다리 밑에서 거지들과 생활하면서 운동을 열심히하여 협객이 되었습니다. 일본상인과 깡패들로부터 조선상인들을 보호해주면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우미관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전국구 깡패가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1966년 9월 15일 사카린밀수사건 대정부 질문 중 정일권총리와 장기영부총리 등 국무위원을 향해 오물투척을 하여 악명을 떨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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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회 오물투척사건(國會汚物投擲事件)은 1966년 9월 22일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의가 진행 중이던 국회 본회의에서 김두한 의원이 오물(인분)을 국무위원 및 장관들에게 투척한 사건이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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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6년 9월 15일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가 동년 5월 일본에서 사카린의 원료를 밀수해 들여온 사실이 경향신문의 보도로 알려지며 정재계를 넘어 사회 전체가 뒤집혔습니다. 이에 국회에서 본회의가 열려 특정재벌 밀수 사건에 관한 질문 안건의 상정 및 통과가 진행되었고 관계인들이 모두 소환되어 추궁을 받았습니다.

    1966년 5월 발생한 이 사건은 6월 초 벌과금 추징으로 일단락 되나 일단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산,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가져온데는 중앙매스콤과 경쟁 관계에 있던 여타 언론들이 이 사건을 호재로 삼아 연일 대서특필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자극했습니다.

    본 회의에서 김두한 의원이 국무총리를 비롯한 일부 각료들에게 오물을 투척하는데, 이틀째 속개된 삼성 재벌밀수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문에서 김두한 의원은 질문 도중 미리 준비한 오물통을 열어 국무위원 석에 앉아있던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등 수 명의 각료들을 향해 던졌습니다.

    김두한 의원은 밀수 사건을 두둔하는 장관들은 나의 피고들이라며 사카린을 피고인들에게 선사한다는 말과 함께 인분을 국무위원들을 향해 투척, 사건 당일 이병철 한국비료 사장은 사카린 밀수사건과 관련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언론 및 학원사업에서 손 뗄 것을 선언했고 그 후 이병철 사장은 헌납 교섭을 맡았던 장기영 부총리가 해임되자 개각 1주일만인 1967년 10월 11일 한국비료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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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가져온

    데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밀수'를

    '5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해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삼성 소유의 중앙매스콤과

    경쟁 관계에 있던 여타 언론들이 이 사건을

    호재로 삼아 연일 대서특필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자극했다는 점 등이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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