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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칠한어치246
훤칠한어치24623.05.08

고구마와 감자는 언제부터 먹기시작 한건가요?

달콤한 맛 때문에 고구마를 좋아하고 감자도 고소함 때문에 좋아해서 빠질수 없는 식품인데 예전엔 감자와 고구마로 끼니를 때울정도로 많이 먹었던 음식들이었는데 고굼와 감자가 원래부터 있던것들이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고구마와 감자는 한국에 언제부터 들어와서 우리식탁에 자리잡은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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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반도에 고구마가 들어온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18세기 후반으로, 감자가 들어온 시기(19세기 초반)와 비슷한 무렵이다. 고추나 담배의 전래와 혼동하여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나,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본에도 고구마가 보급되지 않았다. 고구마와 감자는 훨씬 나중에 보급된 구황작물이다.

    고구마가 조선에 전래된 경위는 조선 영조 39년(1763)에 조선 통신사 조엄이 일본 쓰시마 섬에서 고구마를 목격하고 이듬해 제주도와 동래부(부산) 영도에서 이를 기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정설이다. 조선 통신사들이 사신으로서 일본으로 길을 향하던 가운데 군고구마 가게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조가 이를 보고받자 "그럼 그 종자를 가져와서 심어보라." 하고 명하여 심은 것이 시초로 여겨진다.

    조선왕조실록에 정확한 전파 시기가 적혀있는 고구마와 달리, 감자는 정확한 전래 시기가 적혀 있지 않다. 일단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1824-5년쯤에 청나라를 통해 전래되었다고 한다. 청나라와 교류하며 조선에 전해졌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사람들이 조선에 인삼을 도둑질하러 넘어왔을 때 먹고 버티려고 감자를 심어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감자가 조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금령을 내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함경북도 무산군의 수령 이형재가 감자를 보급하려 할 때도 감자를 심던 사람들이 벌 받을까 봐 시치미를 떼며 씨감자를 주지 않아, 많은 소금과 교환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한다.[39]

    이렇게 도입되어 감자는 한반도 북방 지역과 강원도 산간까지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남부까지 전해지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일례로 1832년에 전라북도 지방에 머물렀던 영국인 암허스트 호가 감자 재배법을 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울에서는 1883년 선교사가 처음으로 재배했다.

    이는 추정컨데 이미 18세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고구마가 남부 지방에서 널리 보급되어서 감자는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반대로 북부 지방에 감자가 빠르게 전파된 이유도 고구마는 추위에 약해서[41] 추운 북부지역에 별로 전파되지 못해서 대신 감자가 빠르게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시기 이전에 한반도 지역에서 감자 먹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명백한 고증오류이다.

    역사적으로는 이렇고, 2015년 현재 연간 생산량 99만 8460톤(통계청 집계)인 감자의 주 산지는 원산지처럼 고산지대인 강원도(전국 생산량의 35%)가 압도적으로 많고, 경상북도(15%), 충청남도, 경상남도, 충청북도 순서이다. 제주도산 감자가 대형마트에 꽤 들어와 있지만, 생산량은 서울이나 광주 같은 대도시를 빼면 전국 최하위권. 그래도 연간생산량 2만 600톤으로 9900톤인 인천보다 2배 이상 많다.

    출처: 나무위키 고구마, 감자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마와 감자는 훨씬 나중에 보급된 구황작물이다. 고구마가 조선에 전래된 경위는 조선 영조 39년(1763)에 조선 통신사 조엄이 일본 쓰시마 섬에서 고구마를 목격하고 이듬해 제주도와 동래부(부산) 영도에서 이를 기르기 시작했다라고 합니다.


  • 고구마는 170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조엄 선생 등에 의해 전래되었고


    감자는 1800년대 초반에 중국과 교류하던 북쪽 지역 백성들에 의해 전래되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