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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띵
티모띵23.02.09

시집살이, 처가살이는 언제서부터. 했나요?

안녕하세요? 요즘은 잘 안 한다는 시집살이 처가살이가 존재했었는데요 대한민국 며느리 파이팅!! 휵시 시집살이, 처가살이는 언제서부터. 했나요? 궁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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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집살이는 조선시대 우리나라 여성에게는 최악의 시대로 그 근본을 남존여비와 삼종지법으로 볼수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상위에 누이고 구슬을 주어 놀게 하고 ,딸을 낳으면 상 아래 누여서 실패를 가지고 놀게한다고 하였듯 남녀는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귀천으로 갈라져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는 가정내에서도 남편은 곧 아내의 하늘이라는 사상으로 남편을 손님같이 공손히 받드는 것이 아내의 미덕이라 하였습니다.

    또 유교이념을 국시로 삼고 예악으로 시종한 조선시대에는 효를 백가지 행실의 으뜸으로 삼아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시부모를 섬기며, 아들을 낳아서 대를 잇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시집살이에 치명적인 굴레가 정절사상으로 이에 따라 종교의 계율같이 강요된 것이 여자의 재가금지법으로 이것은 주자학의 실천철학 가운데 여성들에게 가장 잔인한 악법으로 노리개 삼아 여성들의 옷고름에 차던 은장도는 남이 찌르라는 것이 아니라 정조를 지키지 못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뜻에서 생긴것입니다.

    또 신분이 귀할수록 혼인연령이 빨랐던 것은 왕실에서 10세 내외면 국혼을 하였던 것으로도 알수 있고, 딸을 둔 집에서 가난하면 식구 하나 줄이기 위해 서둘고, 가세가 넉넉한 집에서도 신랑의 나이가 어리므로 아무리 신부의 나이가 2,3세 위라해도 10조혼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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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연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으로 따진다면 고구려의 서옥제(또는 남귀여가혼)가 처가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처가의 서옥이라는 집에 남자가 장가가서 아이가 어느정도 클때까지 여자집에 살다가 아이가 다 크면 다시 남자집으로 가는 제도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처가살이라는건 아주 역사가 깁니다.

    유교가 보수화되는 조선 중기이후에나 친영제라는 여성이 남자집에 시집가는 형태의 혼이 자리잡은 것일 뿐.


    보통은 남자가 여자집에 장가가는 남귀여가혼이 흔했습니다. 조선초기까지만해도 남귀여가혼이 대부분이었고, 친영이란걸 하는 집은 거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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