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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6.15

김대중 대통령 납치사건은 어떤 일인가요?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훨씬 전인 1970년대에 납치를 당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당시 납치사건을 일으킨 범인들은 누구이고 어떤 처벌을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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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중앙정보부 주도 하에 괴한들에 의해 납치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유신체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사건에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쿄에서 ‘한민통’ 결성을 며칠 앞둔 1973년 8월 8일,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팔레스 호텔로 간 김대중은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이후 선박 용금호에 감금된 채 동해로 강제 압송되었다가, 129시간 만에 8월 13일서울의 자택 부근에서 풀려났습니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한 일본 경찰청은 납치 현장에서 주일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의 신분으로 일본에 머물던 김동운 중앙정보부 요원의 지문을 채취하는 등 증거를 확보하여 관련자 출두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관련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관련자 출두 등 협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한국 공권력에 의한 일본 주권의 침해라는 한일 간의 외교문제로 비화하였고 양국 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또한 북한이 8월 28일 남북회담 중단을 발표하는 등 남북관계 진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당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주도 하에 괴한들에 의해 납치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일본 경찰청이 사건현장에서 김동운 주일 한국대사관 일등서기관의 지문을 채취하는 등 증거를 확보하고 관련자 출두를 요구하였으나 한국 정부가 관련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거부함으로써 이 사건은 한국 공권력의 일본 주권침해라는 한일 양국간의 외교문제로 비화, 한일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조정 및 한일간의 막후절충으로 김동운 해임, 김대중의 해외체류중 언동에 대한 면책, 김종필 총리가 일본을 방문해 일본 정부에 사과하는 것 등이 합의됨으로써 양국 관계는 정상화 되었고 이후 공식적인 사건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 한국과 일본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있었으며 그간 언론매체의 보도 등을 통해 한국 중앙정보부의 납치공작 전모와 가담자 신원이 공개되었지만 법률적 절차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범인인 윤진원은 해외의 공작단 단장으로 1961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될 때 그는 육군 소령으로 참여, 당시 윤진원 대령은 암호명 KT작전을 직접 지휘해 용금호에 실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작전이 실패하여 준장 진급에 실패하고 퇴직하나 4년 후 박정희의 특별 지시에 의해 관리관으로 재임용됩니다.

    김동운은 실제 납치를 실행한 인물로 한일간의 외교 문제로 커지자 외면적으로는 퇴직, 퇴직 후 바로 복직해 8국부단장에 임명, 정부의 월급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