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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6.20

과거 부여에 있었던 순장 제도가 궁금합니다.

과거 부여에는 순장이라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을 따르던 신하와 노비를 산 채로 같이 묻어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당시 신하와 노비들이 저항없이 이 풍습에 따랐나요? 그리고 그만큼 사람이 묻히려면 무덤의 크기는 어느 정도 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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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에서 같이 묻히는 사람은 시종, 궁녀 , 노예, 무덤의 주인공이 왕 등 높은 사람이면 그 신하, 생전의 가족을 묻기도했으며 기본은 생매장이지만 같이 묻을 사람들을 먼저 살해 후 시신을 묻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자원해서 순장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권력 다툼에서 정적들을 합법적임녀서 효율적으로 숙청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제도는 어떤 죽음을 뒤따라 다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주된 시체와 함께 묻는 장례 습속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순사(殉死)라고도 한다. 통치자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남편이 죽었을 때 신하나 아내가 뒤를 따르는 습속은 세계적으로 분포하는데, 중심을 이룬 것은 신분 계층이 있는 사회, 뚜렷하게 가부장제적(家父長制的)인 사회, 특히 초기 고대문명과 그 영향권에 있는 사회에서 성행하였다.

    중국에서는 은(殷)나라 때 많은 청동기 등의 껴묻거리[副葬品]와 함께 많은 사람을 죽여 순장하는 묘제(墓制)가 있었다. 그 예로서 허난성[河南省] 안양[安陽] 부근의 무관촌(武官村) 북쪽에 있는 큰 묘에서 79구, 허우강[後崗]의 순장갱(殉葬坑)에서 54구의 유체가 발견되었다. 이들 왕후 묘에 순장된 사람들은 왕을 시중들거나, 호위하는 뜻으로 말·개·수레·무기·장신구·청동기·도자기 등과 함께 매장되었다. 또한 은나라에서는 사자(死者)의 부활관념과 관련하여 어린 아이들을 순장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사자의 영혼에 성장력이 강한 아이들의 영혼을 합일시켜 다시 재생시킨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순장 습속은 서주(西周)시대까지 성행하였으나 그 이후에는 급격히 줄었다.

    특히 순장 습속이 성행한 지역은 고대 오리엔트이다. 유프라테스 하류의 우르 유적에서는 왕릉 바깥쪽의 수혈(堅穴)에서 59구의 순장자가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6명은 완전 무장한 군인이고, 9명은 값진 장신구를 걸친 여자였다. 또한 이집트에는 제르왕의 묘 둘레에 275명의 후궁과 43명의 노비 등을 순장한 묘가 있고, 여기에서 1.6km 떨어진 곳에는 269명이 순장되어 있다.

    오리엔트의 고대문명은 주위의 여러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순장의 풍습도 이와 더불어 파급되었다. 그 예로, 《일리아스》를 보면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을 때 4마리의 말과 2마리의 개를 화장(火葬)한 외에 아킬레우스는 12명의 트로이 사람을 죽였다. 이것은 말 또는 개와 함께 저승에서 파트로클로스를 시중들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스키타이왕이 죽었을 때에는 한 사람의 후궁, 잔을 받드는 사람, 요리사·마부·시신(侍臣)·음악 연주자 등과 함께 금잔 등 한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을 껴묻고 위를 흙으로 쌓아 거대한 둔덕을 만들었다. 유럽에서는 이 밖에도 고대 갈리아인·아일랜드인, 볼가강(江) 연변의 불가리아인 및 슬라브인이 사는 지역에서 순장의 습속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특히 서(西)아프리카 및 동남아프리카에서 순장이 성행하였다. 이곳에서도 대부분은 신하나 처첩들이 순장되었으나, 남편이 아내 뒤를 따라서 죽어 순장되기도 하였다. 서아프리카의 아샨티족(族)은 왕의 자매인 경우, 왕의 허락만 있으면 비록 신분은 비천하더라도 미남이기만 하면 남편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비천한 신분의 미남 남편은 아내가 죽거나, 외동아들이 죽으면 같이 따라 죽어 순장되어야만 하였다. 또한 북아메리카의 나치토체스족도 왕족의 여인과 혼인한 남자는 아내가 죽으면 순장되었다.

    인도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분신 자살하여 순장되는 '사티'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1829년 법으로써 금지되었다. 이 습속은 원래 의례적으로 왕을 죽이는 습속과 왕이 죽은 뒤 왕비도 따라 죽음으로써 두 사람이 저승에서 다시 부활한다는 줄거리의 신화와 복합체를 이루어, 동남아프리카의 로디지아에서 발원하여 서아시아·남인도 등 인도양에 둘러싸인 지역으로 파급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셀레베스 등지에서는 추장이 죽으면 노예를 죽여서 순장하는 습속이 성행하였다. 보르네오의 카얀족은 죽은 사람의 가족 가운데 여자가 먼저 창으로 노예에게 상처를 입히면, 이어 남자 가족이 이를 찔러 죽였는데, 이들 노예는 저승에서 주인을 시중들도록 죽임을 당하여 순장되었다. 또한 보르네오와 셀레베스에서는 장례 때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 오는 사람사냥을 하는 습속이 있었는데, 이것도 순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오세아니아의 피지섬에서는 지역 사회의 유력자가 죽으면, 처첩·친구 및 노예가 교살(絞殺)되어 순장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중앙아메리카·콜롬비아·페루 등의 고대 문명 지대에서 군인·노예·처첩 등의 순사·순장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기원 전후에 황족이 죽으면 평소 시중을 든 사람들을 그 능(陵) 주위에 생매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646년에 스스로 순사하거나 다른 사람을 교살해서 순장하는 일을 법으로 금하였다.

    이와 같이 순사·순장은 세계의 고대 문명지대와 그 영향권에 있는 지역에서 이루어진 습속이었다. 그러나 노예의 노동력, 처첩의 인격이 중시되면서 순사·순장의 습속은 점차 없어졌고 이에 갈음하는 여러 대용물이 발달하였다. 그 예로 북베트남의 종족 중에는 묘지 옆에 가옥(假屋)을 짓고, 이곳에 남자 또는 여자 인형을 만들어 놓아 이를 때리면서 죽은 사람의 시중을 잘 들라고 명령한다. 이 밖에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 폴리네시아 등 지역에는 상(喪)을 입는 사람 스스로가 몸에 상처를 입히고 머리를 삭발하는 풍습 등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들 풍습 가운데는 순사·순장을 대신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지증왕 때문에 순장제도가 폐지되었죠.

    그런데 순장제도는 산 채로 묻기도 하고 죽인 채로 묻기도 합니다.

    앞서 나온 것처럼 산 채로 묻기도 하고 강제로 죽여서 묻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여 묻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