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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즐거운가오리18823.12.22

조선시대 기로소는 어떤 관청이었나요?

조선시대에 기로소라는 관청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처음 들어본 것 같습니다

기로소는 어떤 임무, 역할을 하던 관청이었나요?

기로소의 장은 어느정도 직급의 사람이

임명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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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2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 70세가 넘는 정2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가 기로수입니다.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는 관원은 조선 건국 초에는 문신으로 정2품 실직에 있는 70세 이상인 자에 한정되었고, 음서 출신자나 무관은 참여할 수 없었다고합니다. 기로소에 참여한 자는 기로소당상이라 불렸으며, 정해진 인원수는 없었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정2품 실직에 있는 자 가운데 나이 70세가 되는 자가 없으면 종2품 실직자 1~2명을 왕에게 보고하여 기로소에 들도록 하였으며 기로소당상은 특별히 맡은 일이 없더라도, 동일한 직함으로 왕에게 국정에 대해 건의하기도 하였습니다. 단종실록의 기록에 보면 광해군 때 일시적으로 음관이 기로소에 들어가기도 하였다고합니다. 1765년 기로소가 독립된 관서로 위상을 갖게 되면서, 수직관 2명을 두었고수직관은 승문원과 성균관의 7품 관리 이하가 겸직하게 하였으며 수직관으로서 재직 기간 900일이 되면 6품으로 승급하도록 하였습니다. 기로소는 연로한 고위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로, 이전에는 사적인 모임이었으나 조선조에 들어 공적 성격으로 변화하였고 이는 조선조의 교화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고 할 수있으며 왕이 노인을 우대하는 것을 보여주어 일반인들이 어른을 대우하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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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기로소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군요.

    기로소에서는 봄 · 가을 두 차례 기로연을 열고 명부를 관리하는 등의 일 외에는 직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조선시대의 관리들은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을 더할 수 없는 영예로 여겼습니다. 청사는 서울의 중부 징청방에 있었으며, 1394년에 건축하고 뒤에 증축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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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로소는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관료의 친목,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 입니다.

    원칙적으로 문과 출신의 정2품 이상 전직, 현직 문관으로 나이 70세 이상인 사람만이 들어갈수있었습니다.

    이들을 기로소당상이라 했고 인원 제한은 없었으나 정2품 이상의 실직관원 가운데 70세 이상이 없을 경우 종2품 관원 중 1,2인을 선임해 들어가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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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연로한 고위 관료의 친목 ·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인데 ‘기소 (耆所)’ 또는 ‘기사 (耆社)’라고도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원로 회 같은 곳이 였습니다. 기로소의 장은 당상관 이상으로 정경( 2품 판서급) 의 문신으로 제한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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