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때 불렀던 애국가는 ‘올드랭사인’에 맞춘 ‘구 애국가’였습니다. 새로운 애국가의 필요성을 깨달았던 안익태는 1935년 12월 28일 미국 시카고 한인교회에서 신작 애국가를 발표합니다.
이 신작 애국가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북미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는 충칭 임시정부에 기존 올드랭사인 곡조 애국가 대신 안익태의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임시정부 국무회의는 이 요청을 허가키로 결의하고 1941년 2월 1일자 ‘공보 제69호’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고시했습니다.
제33회 의정원 회의부터 공식적으로 불리던 애국가는 2년 뒤 광복군 지대까지 보급되면서 국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한편 임시정부는 해방이 된 후에도 신익희 내무부장 명의로 새롭게 건국할 국가의 국호는 대한민국, 국기는 태극기, 국가는 애국가를 사용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개원식은 애국가 봉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했습니다. 이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애국가를 불렀고 이때부터 모든 국가 행사에는 반드시 애국가를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