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역법은 어떠했나요?고려 스스로 만든 역법체계가 존재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시대의 역법은 어떠했나요?고려 스스로 만든 역법체계가 존재했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불변해했다고 알고있는데 고려시대는 어떠했는지 본인들만의 것이 있었는지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에서는 태조 이래 당나라의 선명력을 이어받아 썼을 뿐, 따로 새로운 역을 만들어 쓰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281년(충렬왕 7)에 원나라 사신 왕통(王通)이 수시력(授時曆)을 가지고 와서 이 역법의 취지를 설명한 조서(詔書)를 읽어 주었던 일이 있었다. 선명력은 822년부터 중국에서 채택한 것으로 태조 왕건이 건국(918년)할 때까지 거의 100년이나 지났으므로, 그 술법에 차이가 생겨 당나라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개력하였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이전대로 선명력을 계속 사용하다가 1309년(충선왕 1)에 최성지(崔誠之)가 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서 수시력을 얻어 와 연구하였다. 그러나 일월식에 관해서는 계산방법을 모르므로 이 계산만은 선명력의 옛 방법을 따라 썼다.
원래 원나라에서 쓰던 대명력(大明曆)이 천행과 맞지 않아 개력하지 않을 수 없어 1276년(지원 13)부터 5년간의 준비기간을 두고 천문관측을 정밀히 한 후 수시력을 편찬하였다. 이 역은 가장 좋은 순 중국류의 역법인데, 1281년 이후 350년(대통력 포함)이나 중국에서 계속 쓰였다. 수시력은 명대에 와서 극히 미미한 수정을 거쳐 대통력(大統曆)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다. 수시력에서는 적년(積年:여러 해)과 일법(日法)을 폐지한 다음, 세실소장법(歲實消長法)을 채택하고, 정밀한 관측과 특별한 산법에 의하여 역을 편찬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내부에서 새로운 역을 구성했던 듯하다. 이미 1052년(문종 6)에는 태사 김성택(金成澤)에게 명하여 십정력(十精曆)을 만들게 하였고, 이인현(李仁顯)에게는 칠요력(七曜曆)을, 한위행(韓爲行)에게는 견행력(見行曆)을, 양원호(梁元虎)에게는 둔갑력(遁甲曆)을, 김정(金正)에게는 태일력(太一曆)을 만들게 하였으나, 이들의 역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지금의 천세력(千歲曆)이나 칠정력(七政曆)의 초기 작품인 듯 생각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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