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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6

경주 안압지에서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뀐 이유가 무엇인가요?

최근에 경주를 방문했는데 예전에 안압지였는데 지금은 동궁과 월지로 이름이 변경되었더라구요.

이렇게 이름이 변경된 이유가 무엇인지 원인을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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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23.04.06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

    무리가 있는 연못이라 하여 ‘안압지’라

    불렀는데, 원래 이곳은 신라시대 왕자들이

    기거하던 별궁이 있던 자리다.

    그래서 2011년 ‘동궁과 월지’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문무왕 14년(674)에 연못인 ‘월지’가 조성되었고, 삼국통일이

    완성된 이후인 679년에 ‘동궁’이 지어졌다고 전한다. 동궁내의 ‘임해전’은 연희, 회의,

    접대 장소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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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가 망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운다고 하여

    기러기 안(雁), 오리 압(鴨), 못 지(池)로 부른 것이 오늘날 안압지(雁鴨池)였습니다.

    즉 안압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슬피 우는 연못, 망국 신라를 의미합니다.

    다행히 1980년 발굴된 토기 파편을 통해 신라시대에

    이 못의 이름이 월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문무왕(文武王)이 674년에 궁전 경주 월성의 동쪽에 호수를 만들고,

    679년에 같은 위치에 동궁을 별궁으로 지었다는 기록을 복원하여

    안압지에서 동궁과 월지로 바꾼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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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원래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신라 때 썼던 이름은 아니고, 조선 초기의 기록인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등에 기록된 것이라고합니다. 조선시대에 이미 폐허가 되어 갈대가 무성한 이 곳 호수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안압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합니다.

    그러나 1980년에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 호수를 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러한 명칭은 반월성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임해전의 이름도 원래는 월지궁이라서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최근 이곳의 정식 명칭도 오랫동안 써 왔던 안압지 대신 동궁과 월지로 변경되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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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어서, 달이 비치는 연못을 뜻으로 불린 곳이기에 "안압지" 대신 "동궁과 월지"로 변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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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주 안압지는 신라 시대에 지어진 유적지로, 안압지의 대표적인 유적인 첨성대와 함께 동궁, 월지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안압지가 동궁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유는 안압지가 신라의 동해안 궁궐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안압지에는 천마총(天馬塚)이라는 동해안 지방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 지역이 동해안 지방의 중심지라는 의미에서 동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안압지는 월지라는 이름도 지니게 되었는데, 이는 안압지 주변에 월지(月池)라는 연못이 있어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연못은 안압지의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안압지가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뀐 이유는, 신라 시대에 안압지가 중요한 궁궐이었기 때문이며, 이 지역의 특징적인 지형과 경치가 각각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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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경주 안압지는 고려 시대 왕실의 수도였던 곳으로, 안압지에서 신라의 56대 국왕인 광개토대왕이 토지개혁과 유민 정책을 실시하면서 경제적으로 번영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안압지는 대신부와 호위병들의 주둔지가 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동궁과 월지로 개칭되었습니다.

    동궁은 대신부인(왕비)이 거처했던 곳으로, 안압지 동쪽 끝에 위치한 건물군을 일컫습니다. 월지는 왕비들이 수렵하거나 오락을 즐겼던 곳으로, 동궁 북쪽에 위치한 2채의 건물과 주변의 정원을 일컫습니다.

    따라서, 안압지에서 동궁과 월지로 이름이 변경된 것은 조선 시대 대신부와 왕비들이 이곳을 거처하면서 그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외에도, 안압지가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면서 관리 및 보존 목적으로 이름을 변경한 것인지도 추측되지만, 공식적인 명칭 변경 이유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근거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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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중에게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안압지는 신라 때 명칭이 아닌 조선 초기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 등에 기록된 것으로 조선시대 이미 폐허가 되어 갈대가 무성한 호수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안압지라 불렀습니다.

    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 호수를 월지 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월지는 반월성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고 임해전의 이름도 원래는 월지궁 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해 이곳의 정식 명칭도 오랫동안 써 왔던 안압지 대신 동궁과 월지로 변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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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주 안압지에서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뀐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압지는 신라 시대부터 왕실의 사무처 및 도서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개항을 기념하기 위해 월지라는 이름으로 활용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동궁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안압지가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뀐 이유는 각 시대마다 그 용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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