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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한쿠스쿠스87
건장한쿠스쿠스8723.12.21

카노사의 굴욕의 두 주인공 그레고리우스 7세와 하인리히 4세에 대한 질문입니다.

카노사의 굴욕이라는걸 예전에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요...

카톨릭의 개혁을 주도했던 그레고리우스 7세와 하인리히 4세의 갈등으로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맞아야 경쟁이라는게 가능했을텐데

세속적이고 군사적인 힘을 가졌던 하인리히 4세에 대항할 수 있었던

그레고리우스 7세의 힘은 무엇이었나요?

하인리히 4세가 어릴때 즉위하고 섭정하고 왕권이 약화 됐을때

귀족들의 힘이었을까요?

당시 신성로마제국 귀족들 또한 하인리히 보다 힘이 약했다고 알고 있어서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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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돌덩어리1599입니다.

    돈도 많았고 땅도 많았고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종교의 우두머리라는 힘이죠

    무신론이 만연한 현대사람들을 잘 느끼기 힘들어 하지만

    과거의 종교란 세계관 그 자체 였습니다

    종교가 바로 철학이자 과학이자 법학이었던 거죠
    즉, 그 때의 교황은 철학의 우두머리이자

    과학의 우두머리이며, 도덕의 우두머리 였던 것 입니다.

    당연히 따르는 사람도 많았고, 그런 사람들이 바치는 땅과 돈도 많았어요

    그런 사람이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다" 라고 한다면?

    진짜로 사람이 아닌것 처럼 취급을 받겠죠

    이것이 바로 파문선고 입니다. 교황의 가장 강력한 제제수단이죠

    귀족들이야 교육을 잘 받을 수 있으니까 종교의 영향력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래서 개혁 시도 같은걸 할 수도 있었지만

    귀족중에서도 종교에 열심힌 사람도 많았고

    그냥 하인리히가 싫었는데 교황이 명분을 주니까 좋다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