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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올인
리플올인23.04.11

조선시대나 과거 에 성벽은 다 사람이 직접돌을 날라 쌓은건가요??

조선시대나 과거 에 성벽은 다 사람이 직접돌을 날라 쌓은건가요?? 성도 엄청크고 웅장한데 사람들이 전부 한건가요? 그당시 기계도 없을테고 시멘트도 없었는데 어떻게 축성을 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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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벽을 쌓을 때 돌은 성벽의 겉면을 이룬 면석(겉돌,), 면석과 속을 채우기 위해 쪼갠 돌(할석) 사이를 끼워주는 북돌(베짱이 돌), 돌의 길이를 길게 하여 겉돌과 북돌, 채운 돌을 한 덩이로 해서 벽을 견고히 하는 긴 돌(심석) 등이 있습니다.

    돌을 모으는 작업에는 돌 줍기와 돌 캐기가 있고요, 줍거나 캔 돌을 운반하는 작업을 운석이라 하지요. 각각의 작업마다 많은 기술자와 인력, 도구가 필요합니다. 돌을 사용 목적에 따라 다듬는 작업을 치석이라 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석장, 석공이 있습니다. 작업 구역을 나누어 책임자와 감독자, 일꾼이 정해져 돌을 쌓았으며, 그 작업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던 것이 삼국시대의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돌을 운반할 때는 수평 운반에 각종 썰매나 바퀴 달린 도구가 이용됐고, 수직 이동에는 지렛대와 도르래가 널리 사용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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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성벽은 평평한 돌을 어울려서 쌓았기 때문에 수직인데 반해 왜성의 성벽은 크고 작은 돌을 조합하여 쌓아 약 70도의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조선식은 많은 양의 돌로 기초공사를 하고서 그 위에 성벽을 쌓아 올리지만 왜성은 기초공사 없이 지면 위에 바로 쌓아 올렸다. 따라서 왜성의 성벽 두께는 2~4M 가량으로 조선식에 비해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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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원 화성의 건설 공사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거중기와 녹로 때문이었어요.

    거중기는 정약용이 중국의『기기도설』

    이라는 책을 참고해 만들어낸 기구예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기구랍니다.

    녹로역시 성이나 집을 지을 때 이용된 기구로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높이 들어 올릴 수 있어요.

    공사 기간을 줄이고 백성들의 힘을 덜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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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사람들이 날라서 만든겁니다~

    조선시대 때 성을 설계하는 직업이 따로있었는데요. 축성관 이라 합니다

    선공감(繕工監)은 조선 시대에 토목(土木)과 영선(營繕)에 관한 일을 맡았던 기관으로, 공조에 속하는 기관이었다. 오늘날 국토교통부와 비슷한 업무를 수행

    ​유명 축성관은 정조때 수원화성 을 설계한 이치성 이란 사람 화성의궤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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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벽이나 여러가지 성을 지을때는 설계 도면은 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을 쌓고 하는것은 직접 돌을 날라다가 일을 하시는 분이 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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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장비가 없던 시대에 이런 어마어마한 성벽을 건축한다는 것을 보면

    인간 능력의 비상함을 느낍니다.

    중장비는 없었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간의 힘으로 들 수 없는 무거운 것을

    채석장에서 가져올 수 있는 방법들은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을 동원하여 축성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정조왕이 축성한 수원화성은 기중기 원리로 만든 ‘거중거’라는 장비를 사용하여

    공사 기간도 단축하고 인부들도 덜 고생한 대표적인 축성사례입니다.

    거중거는 다산 정약용이 축성을 위해 개발한 기구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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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숙련된 노동자와 장인이 성벽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공법을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습니다. 대규모 성벽을 쌓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노동력과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개인이 직접 돌을 들고 성벽을 쌓았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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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르레를 이용해서 나른 것보다 지게꾼 들이 지게에 여러개의 벽돌 돌 등을 이고 하나하나 날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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