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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펀지송
스펀지송24.04.27

원나라는 왜 색목인을 우대했나요?

몽골이 세운 나라인 원나라는 몽골인 색목인 한인 남송인으로 나눠서 계급을 유지했다고들었는데요 한인과 남송인은 패배했으니 그렇구나하겠는데 왜 색목인은 한인과 남송인위에 두고 우대를 했나요? 궁금해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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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에 들어와 방대한 인구를 통치해야 했던 몽골인들은 중국인들에게 큰 역할을 맡길 경우 체제 자체의 중국화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색목인들을 우대함으로써 몽골인 중심의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색목인들은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의 다양한 지식과 기술은 원나라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원나라는 색목인들을 우대하고, 높은 지위와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색목인은 금나라, 남송보다 몽골에 먼저 복속되어 몽골 제국의 확장과 안정에 도움을 주어 준지배층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절대 다수의 한족 견제의 필요성 때문에 색목인을 이용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나라는 몽골인 → 색목인 → 한인 → 남인 이렇게 계급순으로 구성된 신분 제도를 실시했는데, 이때 한족들은 3~4 등급의 피지배층으로 분류되어 생활하였다.그리고 원나라에서는 호적상 이들의 신분층을 계관호와 투하호로 나누었는데, 투하호는 귀족에 사적으로 배속된 백성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양민층이었으며 노예층은 '구구'라고 따로 불리었는데 원나라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 이런 노예들을 해방시켜 양민층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면서 쿠빌라이의 대원을 자신들의 19개 국가에 포함시켜 명맥을 유지해온 것으로 보이려 합니다. 물론 칭기스칸의 원보다는 쿠빌라이의 시대가 중국의 체계를 더 아우른 측면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쿠빌라이가 중국 한족을 우대하지 는 않았습니다. 만약 쿠빌라이가 중국 왕조의 계승자라면 한족을 하층민으로 취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신분사회에서 몽골인이 지배민족으로 특별히 대우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후대에는 고려인들이 상대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위구르와 이란인 등 색목인이 우대룬 받았고 한족과 남송 정벌 후 편입된 남송인인 남인은 아래 층 신분으로 정권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