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행사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얼마 전에 부처님 오신 날 연등 행사라는 것을 하더라고요. 이런 연등 행사는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는지 연등행사의 그 역사와 유래가 알고 싶네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등회(燃燈會), 한국의 등 축제’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연행된다. 음력으로 4월 8일, 부처님탄신일이 다가오면 전국적으로 형형색색의 등불이 밝혀진다. 본래 석가모니 탄신일을 기념하는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연등회는 오늘날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국적인 봄 축제가 되었다. 거리거리마다 형형색색의 연등이 걸리고, 직접 손으로 만든 등불을 든 사람들이 모여 기념 행렬에 참여한다. 해마다 열리는 연등회는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아기 부처상을 목욕시키는 관불(灌佛)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연등을 손에 든 대규모 인파의 행렬이 이어지고, 이후 참가자들은 단체 게임에서 절정에 이르는 전통놀이를 하기 위해 모인다. 일반인들은 자신과 가족, 이웃,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복을 비는 마음으로 자신이 만든 연등을 들고 참여할 수 있다. 등불을 밝힌다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전체 사회의 마음을 밝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등회와 관련된 지식과 기술은 주로 사찰과 여러 공동체를 통해서 전승되고 있으며 특히 ‘연등회보존위원회’는 교육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연등회는 사회적 경계를 일시적으로 허무는 기쁨의 시간이다. 연등회는 사회적 역경이 찾아올 때 사회를 통합하고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도록 돕는 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처: 유네스코와 유산 연등회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15일 오후 3시부터 수원화성행궁 광장에서‘2010 수원 연등축제’가 열린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열리는 불교문화한마당에서는 사찰사진전시회, 한국고승사진전, 부모은중경탁복체험, 연등만들기, 단주만들기, 달마도그리기, 살풀이공연 등 전시회와 체험마당, 각종 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오후 6시부터는 봉축법요식이 열리고 오후 7시30분부터 제등행렬이 시작된다. 제등행렬은 화성행궁광장을 출발해 팔달문→종로사거리→장안문→종로사거리→화성행궁광장으로 돌아온다. 제등행렬이 끝나면 봉축문화제 및 대동한마당이 열린다.
공연으로는 경희대와 아주대학교의 풍물공연과 썸타임즈의 통기타 공연, 인기 그룹 크라잉넛의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마지막에는 강강수월래로 참여 시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올해 연등축제는 어려운 경제여건과 여러 가지 힘든 상황속에서도 시민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고 내일의 희망을 전하는 뜻 깊은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12회 담양 대나무축제20100501 - 20100505
대심는 날(죽취일)의 의미를 되살리고 대나무를 통한 지역주민의 단결과 화합을 이루기 위해 대나무축제 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담양군이 주관하여 열린다. 전라남도 선정 10대 축제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나무를 주제로 하는 축제이다.
1999년부터 담양군 내의 각종 행사(군민의 날 행사, 농업제)를 통폐합하여 매년 5월에 죽향축제를 개최하다가 2002년부터 축제의 효율성과 전국화, 세계화를 꾀하기 위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체육행사를 분리하였다. 2004년부터 전국 대나무 악기 음악경연대회를 새로 시작하였다.
사전 행사로 5km, 10km, 하프 부문으로 나뉘어 '전국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마라톤대회'와 대나무 그림전시회, 대나무 죽세공예품 전시회가 열린다. 죽제품 경진대회, 전국 남녀 죽검대회, 전국 대[竹]피리 경연대회, 청소년 종합예술축제가 상설행사로 열리고, 그외 대나무 오르기, 림보, 피리, 엿치기 등 놀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군민의 날 행사를 위해 군내 읍면 대항 줄다리기, 제기차기(단체전), 개고다리 릴레이(단체전), 팔씨름 대회 등과 관내 유치원 대항 장기자랑, 관내 청소년들의 축제한마당이 펼쳐진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석가의 공덕을 찬양한 초기 소승경전에 연등 공양에 관한 기록들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석가의 생존 시기부터 연등회가 행해진것으로 보이며 인도에서 석가탄신일 4월 8일 축하행사로 행상공양을 거행했는데 연등은 그날 밤의 중요 행사였습니다.
인도의 연등회에서는 밤새도록 등을 밝혔고, 꽃과 향을 공양했으며 화려하게 장식한 사균거에 부처님과 보살들을 안치하고 행진하는 행상이 있었고 연희자들의 각종 연희가 공연되었으며, 인도의 연등회는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으로 전래, 이러한 방식의 연등행사는 이후 중국, 한국, 일본의 연등회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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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회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이미 확인되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계속되어왔다. 신라와 고려의 연등회는 불교적 행사였지만, 조선시대에는 민속행사로 행해졌고 해방이후 전통적인 시련, 탑돌이의 행렬 문화가 확대되어 연등행렬로 발전하였다.
-출처: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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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년(진흥왕 12)에 팔관회(八關會)의 개설과 함께 국가적인 행사로 열리게 되었고,특히 고려 때 성행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불전(佛前)에 등을 밝히는 등공양(燈供養)을 향공양(香供養)과 더불어 중요시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전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밝고 맑고 바르게 하여 불덕(佛德)을 찬양하고, 대자대비한 부처에게 귀의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서는 등공양의 공덕이 무량하다고 지적되어 있으며, 『삼국유사』 권5의 감통편(感通篇)에도 불등에 관한 설화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등불을 밝히는 참된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등을 밝히는 것이 곧 연등이고, 연등을 보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을 간등(看燈) 또는 관등(觀燈)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의거하여 연등회가 거국적인 행사로서 성대하게 시행되었습니다. 고려 초기에는 정월 15일에 연등이 있었으며, 정월 15일의 연등이 987년(성종 6) 10월에 정회(停會)되었다가 현종 때 2월 15일로 복설해서 그 뒤 고려 멸망 때까지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에 빈번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종 이후의 연등설화에 관한 기록은 104번이지만 2월 연등으로 정하였던 연등회가 반드시 그 날짜를 지켜서 거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고려사』에 의하면 인종의 기월(忌月:제사달)이 정월이기 때문에 2월로 하자는 청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연등은 망일(望日:보름날)에 여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그날이 한식(寒食)인 경우에는 15일 미리 앞당겨서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인 연등회외에도 특설 연등회가 수시로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067년(문종 21)에 흥왕사(興王寺)가 낙성되었을 때 축제와 함께 5일 밤낮을 계속한 연등회가 성대히 행하여졌습니다. 또한, 1073년 2월에는 봉은사(奉恩寺)에서 불상을 새로 조성하고 경찬(慶讚)을 위한 연등회가 열려 관등과 주연이 밤늦도록 베풀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문종 때에는 경령전(景靈殿) · 중광전(重光殿)에서 성대한 연등회가 있었고, 선종이 8월부터 11월 초순까지 서경(西京)에 머물렀던 기간 동안 서경의 흥국사에서 연등도량이 열렸고 거리에도 등을 달았습니다.
1102년(숙종 7) 9월에도 궁궐에서 신호사(神護寺)까지의 길에 수만 개의 등을 달았고, 1296년(충렬왕 22) 5월에는 공주가 신효사에 가서 연등을 하였는데, 주옥(珠玉)으로 등을 만들어 매우 화려하였다고 합니다. 1314년(충숙왕 1) 2월에는 묘련사(妙蓮寺)에서, 3월에는 왕륜사(王輪寺)에서, 1319년 2월에는 강안전(康安殿)에서 공주가 연등하였고, 1324년에는 상왕이 정경궁에서 5일 동안 점등하였습니다.
12월에는 정경궁에서, 1331년(충혜왕 1) 정월에는 연복사(演福寺)에서 각각 승려 2,000명을 공양함과 동시에 2,000개의 등을 밝혔습니다. 만등회는 등 1만 개를 점등하여 공양하는 의식으로, 이 만등회는 이미 1166년(의종 20)에 열린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공민왕도 문수법회(文殊法會) 때 성대하게 연등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연등 외에도 고려에는 사월초파일의 연등이 있었습니다. 이날은 석가탄생일로서 이 연등은 인도를 비롯하여 널리 행하여졌습니다. 고려의 경우는 4월 8일부터 3일 낮 3일 밤 동안 미륵보살회(彌勒菩薩會)를 설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월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하였다는 것으로, 그 이후 궁중에서도 사월초파일 연등이 행하여졌습니다.
공민왕은 직접 초파일 연등을 열었고, 이때부터 초파일 연등은 일반 서민층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연등의 비용을 만들기 위해서 한 달 전부터 종이를 오려서 대나무에 기를 만들어 달고 성중(城中)을 다니면서 쌀과 베를 구하는 호기풍속(呼旗風俗)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공민왕도 두 차례에 걸쳐 어린이들에게 쌀 등을 하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 호기풍속은 연등행사에 따르는 민속으로 변하여 조선시대의 연등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연등의 의식과 행례는 왕이 봉은사 행향(行香:왕이 사찰에 향공양을 올리러 가는 행차)에 따르는 원칙에 준하여서 총 1,500명이 넘는 대규모로 베풀어졌고 대회(大會)와 소회(小會)로 나누어 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연등날은 공휴일이었고 이 연등회의 모든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연등도감(燃燈都監)을 설치하였는데, 언제부터 설치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상원 연등과 초파일 연등이 계속되었으나, 1415년(태조 15)에 초파일 연등을 중지시켰고, 1416년 이후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월 연등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1414년부터는 정월 연등을 대신하여 수륙재(水陸齋)가 열리고 있습니다. 수륙은 물과 육지에 사는 수많은 영(靈)을 공양하는 의식입니다.
조선 태조는 이 수륙재를 2월과 10월에 열어왔습니다. 이는 불교신자인 태조가 유생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호국신앙의 성격을 띤 봄과 가을의 수륙재를 통하여 연등과 팔관을 정기적 행사로 합리화시킨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월 15일의 연등은 조선시대에 와서 수륙재라는 이질적인 현상을 나타내었지만, 초파일 연등은 많은 기복을 겪으면서도 꾸준하게 전승되어 오늘에까지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2012년 4월 6일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불교의 최대 행사로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 음력 4월 8일의 부처님오신날에 앞서서 서울 종로에서 한국 불교 모든 종파들이 어우러져 연등을 들고 거리를 걷는 연등회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2020년 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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