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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코브라279
검붉은코브라27924.04.24

고려거란 드라마를 보면 강감찬이 처음에는 문인이었다는데 사실인가요?

어렷을적 강감찬이라고 하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합께 귀주대첩으로 유명했던 장수였다 이정도로만 알고있는데요. 강감찬이 드라마에서는 문인이었던데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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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 장군은 983년(성종 3)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예부시랑으로 관리에 나선 인물입니다. 그런데, 거란의 2차 침입시 현종을 몽진을 건의하여 사직을 지켜 문하평장사와 서경 유수를 겸하게 되었으며, 3차 침입시 상원수로 군사 20만을 이끌고 1019년 귀주대첩로 거란을 격퇴하였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장군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된 배경은 20만군을 '상원수'로서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수라는 측면에서 장군이라는 칭호로 불릴 수 있습니다. 즉 임시직 '상원수'에 의미가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무관은 3품 이상으로 진급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관의 지휘를 받아야 했고 그래서 서북면도순검사, 동북면도순검사 지금으로 치면 야전군사령관은

    모두 문관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은 고려시대 문인으로 983년(성종 3년)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시랑 한림학사를 거쳐 평장사가 되었습니다. 요나라의 3차 침입을 격퇴시켰으며 1030년에 문하시중으로 1031년에 특진 검교태사 시중 천수근개국후에 봉해졌습니다. 특히 거란의 2차 침입 때는 현종에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몽진을 건의하였으며 3차 침입 때 친히 도병마사가 되어 군을 이끌어 우리나라의 3대 대첩(살수대첩 한산도대첩 등과 함께 거론되는) 중 하나인 귀주대인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그의 이름을 후세에 떨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대부분의 장군은 다 문신출신 입니다

    고려는 극단적으로 무신들을 천대해서

    현대로 따지면 사령관같은 군대의 높으신 분들은 전부 문신출신이고

    직접 전투나가서 싸워야 하는 현장직만 무신들이었습니다

    이런 차별을 참다못해서 무신정변이 일어난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