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을 계기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조선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였습니다. 특히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여 청나라는 조선을 속방으로 여겼으며, 마젠창, 묄렌도르프를 파견하여 간섭하였습니다.
이에 조선 내에서 개화 정책을 둘러싸고 청의 양무운동을 모델로하는 온건개화파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델로하는 급진개화파 사이에 갈등이 확대되었습니다. 개화당은 청의 간섭을 배제하고, 적극적인 개화정책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친청, 온건 개화파는 이를 탄압하게 되면서 개화당은 정변을 모색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