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원래 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조선 후기에 족보를 사거나 주인의 성을 따르는 일이 많아지며 김씨성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아래의 기사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먼저 한국 중세 봉건제도를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까지 성씨를 가진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성씨는 왕족이나 양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였죠. 노예나 백정, 무당, 기생은 물론 상인이나 대장장이, 승려도 성씨를 가지는 사치가 허락되지 않았죠. 성씨를 받는 방법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건국 당시 지방 영주들을 규합하면서 이들의 공헌을 인정하는 방안으로 성씨를 부여했습니다. 과거에 급제해도 성씨를 받을 수 있었지요. 이때까지 성씨는 매우 드물았습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 성공한 상인들이 몰락한 양반 가문으로부터 족보와 성씨를 사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에 와서는 족보 위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에 다다랐습니다. 대가 끊긴 양반 집안도 외부인에게 성씨를 팔았지요.
고대 한국에서 이 씨와 김 씨가 인기많은 성씨였습니다. 6세기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성씨도 일부 있습니다. 중국 한자로 성씨를 적으면서 같은 소리를 내는 성이 많았기에 같은 성이 더라도 지역을 의미하는 본관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김씨의 경우 경주 김씨와 김해 김씨가 있는 식이죠. 성씨가 모두 비슷해 혈통을 확인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조선 말기에는 친족결혼을 막기 위해 왕이 동성동본(본관이 같은 사람) 결혼을 금지하기까지 했습니다.
https://newspeppermint.com/2014/09/18/korean-surn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