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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4.01.29

조선통신사가 끊기게 된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보낸 조선통신사는 200년간 12차례였다고 기록되잖아요. 1800년대 이후에 조선통신사가 끊긴 배경이나 원인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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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 천황의 친정 체제가 이루어지면서 외교 관계가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조선통신사의 파견도 중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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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통신사 파견은 임진왜란으로 외교관계가 끊어지면서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사명대사 유정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교섭으로 관계 복원의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이후 도쿠가와 막부의 장군이 계승하거나 경사가 있을 때마다 막부의 요청에 의해 통신사가 파견되어, 1607년에서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총 12회에 걸쳐 왕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1811년 쓰시마 방문이 12차로 마지막이었으며, 그 후 양국은 통신사 외교를 재개하기 위해 몇 차례 시도했지만 국내외 사정의 변화로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한일은 침략과 저항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70여 년의 근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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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반정 후 청나라가 건국되면서 조선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는 새로운 외교 관계 구축 즉, 청 중심 책봉 체제를 배제하고 독자적인 상호 연대 강화를 모색했다. 이러한 국제 환경 변화 속에서 통신사는 정례화되었고 대마도와 실질적인 통교를 위하여 문위행(問慰行), 팔송사(八送使), 차왜(差倭)제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대륙 정세가 안정되자 통신사 파견은 의례적인 형식이 짙어졌으며, 19세기 이후에는 외교적인 의미가 상실되어 1811년(순조 11) 대마도에서 국서를 교환하는 ‘역지통신(易地通信)’으로 조선통신사 파견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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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지막 통신사 파견이었던 1811년의 통신사는 양국의 재정이 불안하여 대마도에서 역지통신(易地通信)으로 거행되었으며, 그 이후의 통신사 파견은 경제적인 부담에 점점 노골화되는 서구 열강의 문호 개방 요구로 통신사를 파견하거나 영접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끊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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