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왕이 죽으면 어떤 의식을 진행했나요?
궁에서는 어떤 의식을 진행했나요?
혹시 아시는 분 답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는 장례로 화장과 매장을 병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려는 불교를 정신적 이념으로, 유교를 사회통치 이념으로 구성된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화장은 불교를, 매장은 국장을 통해서 고려시대 장례 모습을 어느 정도 윤곽을 그릴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왕실은 국장을 중국의 법제를 근거로 치렀습니다. 특히, 태조와 덕종, 원종은 각각 중국의 한나라와 위나라, 당나라 상제를 참조하여서 치룬 것으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임금이 승하하면 왕실은 국상을 담당할 빈전과 국장, 조묘도감 등 13색 부서들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들 부서는 국상을 원활하게 치루기 위해서 각각 업무를 분장하고 협조하면서 준비하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국장도감은 발인을, 조묘도감은 능 조성 등 장례업무를 맡아서 처리하였습니다. 고려 왕실은 유거로 임금의 옥체를 빈전에 현궁(玄宮)까지 운구하여서 모시는 매장법을 활용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왕실은 유거로 임금의 옥체를 운구하였습니다. 사가(私家)는 시신을 운구하는 용구로 건거(巾車)와 상거(喪車), 유거(柳車), 영거(靈車)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이들 구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건거와 유거는 중국 문헌에 기술된 내용을 통해서 일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유거는 중국의『삼례도집주(三禮圖集註)』에 묘사된 그림과『조선왕조실록』에 기술되어 있는 부속품과 구조물, 결구방법과 순서, 칠, 크기 등으로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영거는 구체적으로 내용을 기술한 문헌이 찾을 수 없어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거와 건거의 형태와 유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선시대 왕실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흉례(凶禮)」에 기술된 내용을 근거로 임금의 옥체를 현궁에 매장하였습니다.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국장도감은 발인을, 산릉도감은 능 조성을 각각 담당하여서 국장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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