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20년 10월 12일 평양세어 저우언라이와 김일성이 중조변계조약을 체결, 압록강과 두만강 상의 섬과 사주의 분할 근거를 제시, 이후 1964년 3월 20일 평양에서 천이와 박성철이 서명하여 중조변계의정서로 논란의 중심이 된 백두산 천지의 국경이 확정됩니다.
조선과 청나라는 1880년 두 차례 걸쳐 백두산과 그 동쪽의 국경을 명확히 정하기 위해 감계 회담을 가지나 회담은 모두 결렬되며 제 1차 감계회담에서 백두산정계비에 쓰여진 동위토문의 토문이 두만강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 양측이 다투었는데 당시 조선측은 정계비의 위치상 토문은 두만강과 별개의 강이다 주장, 청측은 양국의 기본적인 국경선이 두만강이라는 전제하에 토문은 곧 두만강을 지칭한다 주장했습니다.
제 2차 감계회담에서 조선측은 백두산 산정에서 가장 가까운 두만강 상류인 홍토수를 국경으로 할 것을 주장, 청측은 북포태산에서 발원하는 두만강의 지류인 홍단수를 국경으로 주장했다가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의 논리에 밀리자 홍토수의 남쪽 지류인 석을수를 경계로 삼자고 수정제의합니다.
1909년 9월 4일 조선이 외교권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청나라와 일제는 간도 협약을 체결,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고 백두산정계비를 기점으로 하여 석을수를 그 상류의 경계로 정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함으로 일제가 체결한 조약인 간도 협약은 무효가 되어 이를 새로 국경선을 정하기위해 체결된 조약이 조중변계조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