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전투는 어떤 전투였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전쟁사에서 다부동 전투는 아주 중요한 전쟁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의미로 그런지..
다부동전투는 어떤 전투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부동전투가 어떤 전투인지 궁금하군요.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6.25 전쟁 도중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를 중심으로 숲데미산(이하 수암산으로 통칭) 및 유학산 일대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인 다부동을 백선엽 준장 등이 이끄는 국군 제1사단과 미군 2개 연대가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지켜냈습니다. 이로써 북한군은 공세종말점에 도달, 유엔군은 추후 반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도 불립니다.
지금은 행정구역 명칭이 '다부동'이 아닌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이지만 전투 당시의 지명을 그대로 따라 '다부동 전투'라 부릅니다.경상북도에서는 1988년까지 읍·면의 하위 행정구역 단위로 '동'을 쓰는 곳이 많았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부동전투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은 것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투입된 미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이 지역에서 북한군을 완전히 몰아냈고 이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냄에 따라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는데 실패하였고 결과적으로 북한군의 공격의도를 좌절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북한군은 이 전투에서 전력을 상당히 소진하여야 했고 이는 이후 전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국군에게 있어서는 낙동강 전선을 고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하게 해준 결정적인 전투이기도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부동 전투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었다고 합니다. 백선엽 장군은 제1사단장으로 8000여 명의 국군을 이끌고 북한군 3개 사단 2만여 명의 총공세를 막아냈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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