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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이 피랍된 경과가 어떻게 되나요?

2007년에 우리나라의 샘물교회에서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단체에 피랍된 사건의 원인과 시간에 따른 경과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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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행복한북극곰
      행복한북극곰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7월 19일에 23명의 선교단이 탈레반에게 피랍되었으며

      9월 2일에 19명이 대한민국으로 송환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들중 배형규 목사, 심성민씨가 살해당하였으며

      8월 13일에 여성인질 2명이 석방되었고

      9월 2일 나머지 19명이 석방된것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답변자에게 힘이되는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07년 초반부터 이미 탈레반이 납치를 시도한다는 첩보가 입수 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선교사를 포함한 모든 여행객에게 육로 이동제한과

      아프간 여행제한을 권고 했으며 평소 선교에 욕심이 많던 교회에는 따로 협조 공문 까지 보냈습니다.

      하지만 샘물교회는 이런 정부의 모든 노력을 싸그리 무시하고,

      이미 아프간에 있던 선교단체들도 철수하는 와중에

      공항에서 SNS로 사진이나 찍어대면서 태연하게 선교여행을 갔고

      당연히 납치되었습니다.

      그냥 수도에만 머물렀다면 그나마 안전했을 수도 있지만,

      샘물교회 선교사(대부분 20~30대 비전문가로 이루어진)은

      정부에서 가지말라고 빌었던 남부로 "버스 하나"타고가다가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당시 아프간 남부는 전문종군기자들도 "호휘차량 없이 가는건 자살행위다" 라고 말할 정도로 위험했습니다

      탈레반측은 아프간 파견한군군 전체 철수, 막대한 현금, 구금중인 수감자 석방등의 요구를 해왔고 정부는 요구한 23명 중 18명은 풀어줄 수 있다며 최대한 협상을 시도 했지만

      탈레반측이 협상 결렬을 외치며 피랍된 남자중 한명을 처형, 내일까지 일단 8명을 석방하지 않으면 또 죽이겠다고 협박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을 특하고 파견하고 아프간 대통령과 직접 만나는등 노력했지만

      태러에 굴복할수 없다며 아프간과 미국 정부는 협조를 거부,

      결국 두번째 희생자가 나온 뒤에야 탈레반측과 직접적 통화를 하면서 제대로된 협상이 진행되었습니다

      다행히 한국은 미국감옥에 갇힌 사람을 석방할 수 없다는 설명이 통했는지

      석방조건을 탈레반 측이 포기해준 덕분에 협상은 잘 진행되어

      중간에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미리 석방해준 여성 2명을 포함한 생존자 19명 모두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협상으로 인해 한국은

      1아프간 내 한국군 연내 철수 2아프가니스탄 내 비정부기구 활동 한국인 8월 내 철수 3한국의 기독교 선교사 활동 금지 등의 조건에 동의해야 했고.

      한국은 테러에 굴복했다며 외교적으로 엄청나게 까이게 됩니다. 탈레반측이 한국이 준 몸값으로 무기산다고 광고 하기도 했거든요

      참고로 당시 국내상황은

      납치범인인 탈레반이 언론전에 능하기도 했지만

      당시 중동 분쟁은 최고의 관심사 였기 때문에 피랍 즉시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했는데, 특전사 파견도 물론 준비되고 있었지만

      탈레반이 숨어있는 산기슭비밀기지들은 미군 특수부대도 함부로 못가는 위험구역이기 때문에, 비교적 온건한 탈레반이 상대니 협상이 잘 될거란 기대를 걸고 협상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