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두번의 천도를 한이유가 무엇인가요?
백제의 역사를 보면 공주와 부여 두번의 천도가 발생하는데요
그렇다면 백제는 당시 두번의 천도를 한 시기와 이유 배경이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인해 수도 한성(서울)이 함락되어 첫 번째 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백제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겼으나, 다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여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기는 두 번째 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의 첫번째 수도는 온조왕때 위례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수도를 남쪽 웅진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백제는 세번째 수도인 사비로 옮깁니다. 먼저 웅진으로 옮긴 이유는 고구려 장수왕때 군대를 이끌고와서 백제를 공격합니다.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를 빼앗기자 고구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웅진으로 옮깁니다. 웅진은 북쪽으로는 차령산맥과 금강으로 둘러싸여있고 동쪽으로는 계룡산이 막고있기에 고구려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좋았다고합니다. 그런데 산세에 있어 침입방어하기는 좋았으나 물자의 교통이 불편하여 물자가 부족했다고합니다. 그러면서 사비성은 평야로 펼쳐져있고 물자의 교통도 원활하여 물자가 풍부하고 경제력이 살아날 수있는 곳으로 다시 옮깁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웅진 천도를 한 배경으로는 장수왕이 위례성을 공격해 함락되었기 때문에 천도한 것이었고, 사비 천도를 한 배경으로는 웅진이 교통이 불편하고 요새로서의 기능은 있으나, 조금 더 교통이 편리하면서도 개방된 곳이 필요했기 때문에 천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는 위례성( 한양)에서 웅진(공주), 그리고 사비(부여)로 각각 천도를 하는데 웅진 천도는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 (충청남도 공주)으로 도읍지를 옮긴 사건 입니다. 475년 9월 장수왕이 이끄는 3만의 고구려군은 한성을 불시에 공격하여 함락 시켜 웅진천도가 고구려의 한성 공격으로 야기되었던 만큼 계속되는 고구려군의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방의 요해처주2를 물색해야만 했고 지금의 공주지역은 지리적으로 볼 때 북으로 차령 산맥과 금강에 둘러쌓여 있고, 동으로는 계룡산이 막고 있어서 고구려와 신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해 주는 천험의 요새지 였기 때문 입니다.
웅진 천도 직후부터 일어난 일련의 정치 불안으로 왕권이 쇠약해지고 금강의 범람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 피해가 잇달았는데 또한 도성(都城)이 협소하여 왕도(王都)주로서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였기에 이러한 웅진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538년(성왕 16) 성왕이 사비천도(泗沘遷都)를 단행 합니다. 사비 지역은 금강을 통해 중국이나 왜국과 연결되는 해상교통로 상의 중요한 요지였고, 특정한 세력이 없는 미개발지역이 많았고 비교적 넓은 평야 지대를 끼고 있어서 왕권의 안정은 물론 새로운 백제국가 건설을 위해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이루어 진것 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는 처음 한성에서 웅진으로 그리고 사비로 천도하였습니다. 먼저 웅진(공주)로 천도한 배경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한성이 함락하면서 개로왕이 전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합니다.
두번째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는 538년 성왕입니다. 웅진에서의 백제 왕실은 귀족과 토착 세력에 의해 왕권이 불안했으며, 지형적으로 협소하여 무역에 불리하였습니다. 무령왕 때 와서 국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이를 보다 확충하기 위해 사비로 천도하고 강화된 국왕권을 바탕으로 개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사비 이외에도 무왕 당시 익산(금마저)도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백제의 수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