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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7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는 누구인가요?

우리나라 과거보면 전부 의원들은 남자들만있고 역사적 인물도 허준같이 남성만 있는데요. 여성의사들은 최근에 생긴것인가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는 어느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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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의사는 김점동입니다

    그녀는 1890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보구여관에서 일하고 있던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 (1865~1951)의 통역을 맡게 됐습니다.

    그 후 김점동은 자신도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고, 꿈을 이루기 위해 김점동은 남편 박유산과 함께 1895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리버티공립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1896년 10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해 각고의 노력 끝에 4년 만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됐습니다.


  • 예리한밀잠자리144
    예리한밀잠자리14423.02.27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여의사는, 1900년에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박에스더(본명은 김점동(金點童))이다. 1876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에스더가 의사가 되었을 때 나이는 24세. 에스더는 세례명이며, 성은 결혼한 뒤부터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랐다. 박에스더의 아버지 김홍택은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의 집에서 잡일을 돌보고 있었고, 유달리 총명했던 박에스더가 선교사들의 눈에 띄었던 것. 결국 그녀는 10세 때 이화학당에서 들어가 공부했고, 특히 어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후 우리 나라 유일의 여성 전문 병원으로 서울 정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보구여관(保救女館: 이화여자대학 부속 병원의 전신.)에서 통역 겸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의 여의사 로제타 홀이 그녀에게 미국 유학을 권했고, 남편 홀 박사 밑에서 일하던 박유산을 소개시켜주어 결혼하게 되었다. 당시 박에스더의 나이는 17세였다.

    그로부터 2년 뒤 박에스더는 남편 박유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친 뒤 귀국, 보구여관에서 활동했다. 특히 신식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골 지역으로 가마나 나귀를 타고 가서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는데, 그녀가 돌본 환자들은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에스더는 34세 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편 박유산은 그녀가 의대를 졸업하기 반년 전에 역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900년 6월 볼티모어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한국 최초의 여성의사이자

    여성 의학박사가 된 박에스더입니다.

    박에스더의 일대기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귀국하게 된 로제타 홀은 늘 헌신적이며 영리했던 박에스더를 남겨둘 수 없었다. ‘박에스더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우리라.’ 로제타 홀은 박에스더 부부를 미국으로 오게 했다. 로제타 홀의 친정이 있는 뉴욕 리버티에 도착한 박에스더는 1895년 2월 리버티 공립학교에 등록하여 고교 과정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뉴욕 아동 병원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버는 틈틈이 대학 입학에 필요한 물리학과 수학, 라틴어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1896년 10월, 20살의 박에스더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에 입학했다. 박에스더가 고학(苦學)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로제타 홀은 한국에 다시 와 있을 때(1897년 재입국) 박에스더에게 귀국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에스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로제타 홀에게 보냈다.

    “제가 지금 여기에서 이것을 포기하면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고, 최선을 다한 후에도 도저히 배울 수가 없다면 그 때 포기하겠습니다. 그 이전에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박에스더는 1900년 6월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이자 여성 의학박사가 탄생한 것이다. 의사의 꿈을 이룬 박에스더는 그러나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유학 생활 내내 힘겹게 노동하며 뒷바라지 해주던 남편 박유산. 그런 박유산이 박에스더의 의대 졸업시험을 3주 앞둔 1900년 4월 폐질환이 빠르게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현재 볼티모어 서쪽 로레인 파크 공동묘지에 ‘1868년 9월 21일 한국에서 태어나 1900년 4월 28일 볼티모어에서 사망했다’는 문구가 새겨진 박유산의 묘비와 묘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에스더 [金點童] -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인물한국사, 표정훈, 장선환)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는 박에스더입니다. 이름은 김점동인데요. 박유산과 결혼하여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남편의 성을 따라 박에스더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세례명입니다.

    아버지가 한국에 온 선교사를 돕는 일을 하면서, 여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딸을 이화학당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간 에스더는 1896년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1900년 6월 의사가 되어 한국에 돌아 와 의료 활동을 하다 1910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에스더의 본명은 김점동이다. 에스더는 세례명이고 남편 박유산의 성을 따랐다. 당시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신여성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서구 여성의 지위를 동경해서 남편의 성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것이 한동안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박에스더는 아버지가 감리교 초대 선교사였던 아펜젤러의 집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면서 서구 문물과 인연을 맺었다. 정동에 감리교 선교사였던 스크랜턴 부인이 이화학당을 설립하고 학생을 모집하자 아버지의 후원을 받아 입학했다. 에스더의 언니는 정신여학교 교사였고 동생은 세브란스 간호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교육열이 높은 집안이었다.

    이화학당 시절 박에스더는 영어 실력이 뛰어나 이화학당 교사이자 의사인 셔우드(Rosetta Sherwood)의 통역을 맡았다. 셔우드는 동료 의사 홀과 결혼해서 홀 부인으로 불렸다. 박에스더는 자신의 의지와 홀 부인의 주선으로 미국에서 의학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미국에 혼자 보내길 꺼리는 부모의 권유로 병원에서 일하던 동료 박유산과 결혼해서 함께 떠나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현 존스홉킨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부인이 공부하는 동안 남편은 농장에서 일을 해가며 후원하다가 병을 얻어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박에스더는 고생 끝에 의대를 졸업하고 한국 최초로 양의사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양의로 알려진 서재필이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지 7년만의 일이었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에스더 한국 최초의 여의사



    1. 서양의학이 막 들어오던 때

    삼국시대 중국으로부터 한방의학이 전래된 이래 최초로 서양의학이 전래된 것은,1880년 지석영이 일본에서 종두법을 연구,1882년 전주에 우두국을 설치 교육시킴으로부터 이다. 그러나 사실상의 시작은 1884년 9월 20일 미국 공사관 공의로 입국한 알렌(Allen,Herace Newton)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서양의학의 보다 더 적극적인 활동은, 그후 1885년 5월 3일 감리교의 정식 의료선교사로 내한한 스크랜톤(Scranton,William Benton)에 의해서이다. 그는 알렌의 요청으로 제중원에서 잠시 도와주다가,다음 달인 6월 20일 어머니 (Mrs.M.F.Scranton)와 그의 부인이 도착하자,단독으로 9월 10일부터 정동 주책에서 의료사업을 시작하여,그 이름을 정동제 1병원(The First Methodist Hospital)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병원을 개설한후 찾아오는 환자만 치료해준 것이 아니라, 아현동이나 상동 등지에 진료소를 개설하고 무료 진료를 하며,병원없는 지역을 순회하며 가난하고 병들어 "버림받게 된 자"를 치료해 줌으로, 장로교회의 병원사업과 의사양성에 집중된 것과는 달리,빈민위주의 정책을 펴나갔다. 이렇게 의료사업을 하는가운데,스크랜톤 母子는,남자에게는 진찰을 절대 받지 않으려는 부인들이나 또 소외당한 어린이들을 보고,선교부에 여의사 파송을 청원함으로 1887년 10월 20일 메타 하워드(Miss Meta Howard.M.D)가 내한하여,정동 이화학당 구내에 한국 최초의 부인병원인 보구여관(Caring for and Saving Woman's Hospital)을 개설하였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는 한국의 의학계를 선도하며 열악한 시설과 환경에서도 희생을 감수하며 노력한 김영주(金英柱) 박사입니다. 김영주 박사는 1889년 5월 3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1926년에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숨졌습니다. 그녀는 1906년 대한제국 의과대학 의학과에 입학하고 1912년 의과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의학 연구를 하면서도 우리나라 의학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나아가 한국 현대 의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사는 1900년대 박에스더 입니다.

    1900년대 여자들은 남자의사에게 몸을 보일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많은 여자들이 병에 시달리면서도 진료를 받지 못해 죽었습니다.

    여자 의사가 진료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여자 환자들이 많아 박에스더는 쉴 틈이 없었고 추운 겨울 당나귀가 끄는 썰매를 타고 직접 환자를 찾아다니기도 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대중적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는 조선시대 '의녀장금'입니다. 왕의 주치의까지 맡았던 능력 있는 여성 어의였지요.

    - - -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려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는 1886년에 태어난 김홍도 선생입니다. 김홍도 선생은 동의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한적십자사 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당시에는 남성의 지배적인 의료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열정과 열의로 여성 의사의 지위를 높이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그녀의 업적은 한국의 여성 의학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이후의 여성 의사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의사 박 에스더를 기점으로 여자의사들의 역사와 활동을 집대성한 사료 '한국여자의사 120년'이 나왔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에스더 라는 분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입니다. 1876년 오늘 한국 최초로 여성으로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여성 의사가 된 에스더 박(Esther Kim Pak)이 출생했다. 본명은 김점동(金點童)이다. '에스더'는 세례명이고, '박'은 결혼한 뒤 남편의 성을 따랐다고 합니다.

    Esther Park in 1876, Esther Kim Pak, is the first woman in Korea to graduate from a medical school in the United States and become a female doctor, was born. Her real name is Kim Jeom-dong . Her 'Esther' was her baptismal name, and 'Pak' was her husband's surname after her marriage.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의사는 미국 볼티모어 의과대학에 유학하여 1900년에 의사면허를 취득한 "박 에스더(김점동)"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