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는 개경 인근의 대표적인 나루터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 시대에 외교 사절단의 왕래 등에 중요하게 이용되었다고 하지요. 벽란도의 위치는 현재의 북한 개성시 개풍군 신서리로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지금도 벽란도 나루, 벽란도 마을 등의 지명이 남아 있고 보존도 어느 정도 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는 고려시대 외국에 사신과 상인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던 나루로예성강 하구에 위치한 고려 국제무역항 이였습니다 고려시대 이곳에는 송나라 사신을 위해 벽란정이란 관사가 설치 되어 있었는데 이를 따서 벽란도로 불렀고 조선시대에는 조세미 등을 운반하는 도선장으로서의 역할을 했지요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한 이후 고려 세자는왕위에 오를 때까지 원나라에서 인질로 잡혀가 있어야 했는데 유숙은 공민왕이 될 어린 세자를 모시고 20년 가까이 원나라 땅이 있다가 1349년 벽란도를 통해 귀국하였는데 이때 그 감개무량한 정한을 벽란도라는 시로 남겼지요 또한 고려말 홍건적의 난과 외구의 준동 등으로 무역이 크게 위축되었으며 조선의 건국 후에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가 정책적으로 상업을 통제해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을 하였습니다. 현재 북한에 어떻게 보전되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