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신립장군이 명장의이유가무엇인가요?
조선시대때 신립장군이라고 명장이라고하던데(친구들사이 및 역사책에서 본기억) 신립장군의 역사적 전투 및 주된업적이 무엇이며 어떤전투에서 돌아가셨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신립의 군사는 8천명 정도였는데 이들중에 대부분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군사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왜군은 조선군보다 병력도 우세했고 무엇보다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든면에서 열세였던 조선군이 이기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했고 신립은 본래 북방에서 기병술로 여진족을 때려잡아 이름을 날린 명장입니다. 조선 중기의 무장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도순변사가 되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순국하였다고하며 <신립설화>의 핵심인 ‘신립 장군 이야기’는 그의 이적과 충주 전투를 내용으로 하고있으며 이는 임진왜란의 영웅인 권율의 선택을 받았다면 장차 그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인물이라는 복선을 깔고 있으며, 그가 훌륭한 장군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기대심리가 반영되어 있고 이적담에서는 용력과 지혜가 뛰어나 종을 퇴치하는데 이는 신립이 장차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신립이 포용력이 부족해서 왜군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암암리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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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장군과 같은 경우에는 북변에 침입한 이탕개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하는 등 하여 명장으로 불렸고 신립장군은 탄금대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패배하였고 강물이 투신 자결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립 장군의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북침한 여진족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웠던 장군 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때 충주의 달천을 뒤에 두고 배수진을 쳐서 적과 대결했으나 패하여 탄금대에서 자결 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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