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이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배경이 뭔가요?
러시아의 사할린에는 우리나라 민족 동포들이 계신다고 들었어요. 어째서 춥고 먼 타국에 강제 징용되신건가요? 여전히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삶은 어땠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5년 러일전쟁 승리하여 사할린 남부 지역을 양도받았습니다.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인을 사할린 섬의 탄광, 군수 공장 등에 노동력으로 강제 동원하였습니다. 일본은 사할린에 26개의 탄광을 운영하였는데, 그 중 25개 탄광을 조선인을 징용하여 채굴하였습니다. 일제는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을 확대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자 1939년 징용령을 시행하여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전쟁 물자를 생산하게 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할린 섬의 한인 이주형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첫 번째 분류는 자발적 이주형태로 1870~80년대에 취업을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이주한 한인들이다. 이들은 주로 러시아가 통치하던 북 사할린에 거주했으며 조국보다 더 높은 월급 때문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 사할린 한인들은 점차적으로 생산부문에 성실하게 종사하여 소련국적을 취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많은 한인들이 연해주로 강제이주 되고 이들은 다시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로 강제이주 당하게 된다.
다른 한 부류는 강제적 이주형태로 1938년부터 1945년 사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징용된 한인들이다. 당시 일본은 사할린에서 천연자원 개발을 진행 중이었는데 전시상황과 더불어 일본은 노동력 부족현상을 겪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본은 한반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 필요한 노동력으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해방 후 이들은 귀환 대상자이지만 이들을 일본 국적자로 명명하면서 한국으로 돌아 오지 못하고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인들의 사할린 징용은 1938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일제가 국가 총동원령을 발령하면서 부터이며 당시 일제는 병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대거 관동군에 징집, 이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조선인들을 사할린섬으로 강제로 끌고가 탄광과 벌목장 등에서 강제 노력을 시켰습니다.
이들은 현지에서는 주로 사탕수수 등 농장 일을 하거나 섬에 일본군이 주둔할 때 기지를 건설하고 비행장을 닦는 등의 일을 했으며
강제 동원된 한인들은 일본 기업에 의해 노동력을 수탈당하며 봉급도 예금, 저금 등의 형태로 바로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사할린에서 물자 운반이 힘들자 조선인 1만명을 다시 일본 본토로 끌고 가 혹사시키는 이중징용이 발생하면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기기도했습니다.
광복 후 일본은 사할린 한인들을 학살하기로 했는데 대표적으로 미즈호사건, 가미시스카 경찰서 학살 사건으로
미즈호사건은 일본이 항복 선언 닷새후인 1945년 8월 20일~ 22일까지 사할린의 서부의 미즈호 마을에서 벌어진 일인들에 의한 집단학살 살해 사건 입니다.
가미시스카 경찰서 학살사건은 1945년 8월 18일 북위 50도 소련과의 사할린 국경 바로 아래 가미시스카 경찰서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일본 경찰과 헌병은 소련군과 내통한다는 유언비어에 따라 한인 18명을 무차별 체포해 경찰서 유치장안에 두고 살해 후 증거인멸을 위해 시신을 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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