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신라시대에는 근친간의 결혼이 많았다고 하는데
과거 신라시대에는 근친간의 결혼이 많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신라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에서는 근친간의 결혼이 많았었나요? 이런 근친 결혼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인가요 아니면 우리나라에서만 유행했던 제도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시대는 현재의 규범과는 매우 다른 혼인 관행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와『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초기 박씨(朴氏) 왕실시대 제7대 일성이사금의 부인은 박씨로, 왕과 같은 성의 소유자이나 촌수관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제8대 아달라이사금의 부인은 지마이사금의 딸로, 지마는 아달라와 사촌간이기에 아달라는 오촌질녀와 혼인한 것이 된다.
석씨(昔氏) 왕실시대에는 3건의 동성혼이 있어, 제10대 내해이사금은 사촌여동생과, 제11대 조분이사금은 내해의 딸인 오촌질녀와, 그리고 우로(于老)는 육촌여동생과 혼인하였다.
신라 상대(上代)에 속하는 내물왕계 김씨(金氏) 왕실시대에는 김말구(金末仇)와 휴례(休禮)의 혼인만 계보가 분명치 않은 김씨간 혼인이었고, 6조의 혼인은 모두 계보를 추적할 수 있는 근친혼이었다. 곧 내물이사금과 실성이사금은 사촌동생과, 눌지마립간은 이종사촌여동생과, 눌지의 동생인 습보(習寶)는 질녀와, 자비마립간은 사촌여동생과, ]소지마립간은 오촌숙모와 혼인하였다.
신라 중대(中代)에 속하는 지증왕계 김씨 왕실시대에는 3건의 근친혼이 있어, 법흥왕의 딸은 삼촌인 입종(立宗)의 부인이 되었고, 진흥왕의 아들 동륜(銅輪)은 고모와 혼인하였으며, 무열왕의 아버지 김용춘(金龍春)은 칠촌질녀와 혼인하였다.
신라 하대(下代)에 속하는 원성왕계 김씨 왕실시대에는 4건의 근친혼이 있어, 제41대 헌덕왕은 4촌 누이동생과, 제42대 흥덕왕은 질녀와, 제43대 희강왕은 6촌 여동생과, 그리고 희강왕의 아들인 김계명(金啓明)은 6촌 여동생과 혼인하였다. 신라 하대 후기인 제48대 경문왕으로부터 제56대 경순왕에 이르는 시대에는 김효종(金孝宗)이 같은 성인 김계아(金桂娥)와 혼인을 하였으나 촌수는 분명하지 않다.
이상 신라왕실에서는 근친혼이 빈번하여 질녀 및 숙모와의 혼인에서 볼 수 있듯이 부부는 같은 세대에 속해야 된다는 세대원리가 지켜지지 않은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신라시대에는 왕실 및 귀족계급에서 일부다처제와 첩제(妾制)가 행하여졌음을 여러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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