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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5

삼국지 질문입니다. 진궁이라는 인물,

안녕하세요.

삼국지의 여포라는 무장 휘하에 있었던 진궁이라는 모사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렇게 총명하고 똑똑했나요?

삼국지 게임을 보니 지력이 90이 넘더라구요.

실제로 굉장히 지략이 뛰어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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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궁(陳宮, ? ~ 198년 음력 12월)은 중국 후한 말 조조 휘하의 정치가로 자는 공대(公臺)이며 연주 동군 무양현(武陽縣) 사람이다. 연주자사 유대가 죽자 연주 사람들을 설득하여 조조에 귀부하도록 하였다. 이후 장막을 부추겨 여포를 맞아들이고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진압당했다. 다시 조조에 대항하는 여포에게 여러 계책을 헌책했으나 대부분 채택되지 못했다. 여포 패망 후 조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죽음을 맞았다.

    192년(초평 3년) 연주자사 유대가 황건적한테 패하여 죽었다. 진궁이 연주 사람들을 설득하여 조조가 연주목으로 추대되었다.[1] 194년(흥평 원년) 조조가 지난해에 이어 재차 서주목 도겸을 정벌하러 서주로 나아갔다. 진궁은 조조에 대해 의구심을 느끼고 장막의 동생 장초, 종사중랑(從事中郞) 허사·왕해(王楷) 등과 모반을 계획하였다. 진궁이 진류태수 장막에게 말하길 “바야흐로 여러 영웅들이 들고일어나 천하가 나뉘었습니다. 군께선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사방이 적인 땅에 서계십니다. 칼을 쥔 채 때를 살피기만 하면 족히 인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타인에게 속박만 당하고 있으니 어찌 비루하지 않다 하겠습니까! 지금 연주는 동쪽을 치느라 텅 비어있습니다. 그리고 여포는 장사로서 맞설 상대가 없을 정도로 싸움을 잘합니다. 여포와 함께 연주를 장악하고 천하 형세를 주시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면 한 시대를 종횡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장막이 이를 좇아 여포를 연주목으로 세우니 견성(鄄城), 동아(東阿), 범(范) 등 몇 개 현을 제외한 대부분의 군현이 호응하였다.

    급보를 받은 조조가 급히 군을 돌려 여포와 사투를 벌였다. 195년 산양군 거야현(鉅野縣)의 설란과 이봉 구원에 실패한 여포는 진궁과 함께 1만 명으로 동민현(東緡縣)에서부터 역공을 가했으나 복병에 패하였다. 결국 제음군 정도현(定陶縣)이 뚫리면서 여러 현들을 잃었고 진궁은 여포와 같이 유비에게 투탁했다. 도겸 사후 유비가 그 뒤를 이었던 터였다.[2]

    여포와의 거리감[편집]

    196년(건안 원년) 여포가 서주를 탈취하였다. 6월(음력) 여포의 부장 학맹이 원술을 배후에 두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만류하던 학맹의 부장 조성이 그 진압에 공을 세우고 진궁의 공모 사실을 여포에게 진술하였다. 그곳에 있던 진궁이 모두가 알아볼 정도로 얼굴을 붉혔음에도 여포는 진궁을 중요한 장수라 여겨 이를 불문에 부쳤다.[3]

    198년 여포가 다시 원술과 손잡고 조조에 대적하였다. 조조가 친정을 개시하여 팽성국에 이르렀다. 역격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포는 조조군이 하비에 육박해서야 역격에 나섰다가 격퇴당했다.[2] 여포가 항복을 고려하기에 진궁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며 말렸다.[4] 또 진언하기를 ‘여포가 성 바깥에서, 진궁이 성안에서 서로 기각(掎角)의 형태로 방어하다보면 열흘도 안 되어 조조군의 군량이 다해 승리할 것’이라 했지만 여포의 부인이 “진궁은 조조로부터 갓난아이인 양 귀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우리에게 귀순했습니다. 하물며 장군의 대우는 조조에 미치지 않았는데도 온전히 성을 맡긴 채 처자식은 내버려두고 멀리 나가려 하십니까? 만약 변고가 생긴다면 제가 장군의 처로 남아있겠습니까?”라고 제지하는 바람에 실행하지 못하였다.[5]

    죽음을 자청

    섣달,[6] 여포로부터 이반한 후성, 송헌, 위속이 진궁과 고순[7]을 붙잡아 조조에게 투항했다. 여포는 남은 부하들과 백문루(白門樓)에 올랐다가 이내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하였다. 조조가 진궁에게 “경은 평소 지모가 넘친다며 자부했건만 어찌 이런 꼴이 되었소?”라 묻자 여포를 가리키며 “단지 이 자가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말대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라 답하였다. 이어 신하로서 불충했고, 자식으로서 불효했으니 자신은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노모와 처자식의 처우에 대해서는 “제가 듣건대 효(孝)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타인의 부모를 해치지 않으며, 인(仁)으로써 천하를 보살피는 자는 타인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 합니다. 그 생사는 제가 아니라 명공께 달렸습니다.”라 답하였다. 조조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진궁은 자신을 죽여 군법을 밝히라며 죽음을 재촉하니 그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조조는 눈물을 흘리며 진궁을 전송했고 진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형장으로 향했다. 그 머리는 허도에 효수되었다. 조조는 진궁의 가족을 두터이 대해 그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봉양하고 아들을 가르치며 딸도 시집보내주었다.

    출처: 위키백과 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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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정한낙지284
    단정한낙지28423.05.25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궁(陳宮)은 중국 후한 말 조조 휘하의 정치가로, 공대(公臺)라는 '대단하고 귀하다'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연주 동군 무양현(武陽縣) 사람입니다. 진궁은 강직하고 지혜가 뛰어난 인물로, 젊은 시절부터 명사들과 교류하며 조조의 밑으로 들어갔지만 조조의 서주 대학살때 조조에게 실망하고 조조를 배신해 여포를 끌여들였습니다.

    여포군 소속이 된 진궁은 계책을 발휘해 여보가 서주를 차지할 수 있게 돕는데요 이후 유비군을 끝내야한다고 조언했지만 여포는 진궁의 조언을 무시하고 조조와 연합하다 얻는것도 없이 후에 조조에게 공격당합니다.

    이후 조조는 진궁의 지혜를 높이여겨 데려오고 싶어하지만 진궁은 조조를 거절하고 스스로 죽음을 원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볼때 진궁은 강직한 성품에 지혜가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결국 주군을 잘 만나지 못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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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한 말 조조 , 장막, 여포를 섬겼던 모사로 자는 공대로 연주 동군 무양현 사람입니다.

    성격은 강직하고 장렬했으며 어려서부터 나라 안에 이름이 알려진 선비들과 교우했습니다.

    조조가 막 거병했을 떄 모사로서 그와 함께 일했고 연주 구원전에서 진궁의 행적을 찾을 수 있는데 당시 연주자사 유대가 연주를 공격한 황건적에 의해 죽으니 진궁은 사람들을 설득해 조조를 연주목으로 삼아 황건적으로부터 연주를 구원하고자했고 진궁의 설변을 들은 연주의 포신 등은 이를 옳다고 여겨 조조를 맞이해 연주목을 겸하게했습니다. 조조는 환건적을 격파하지만 포신은 전투 중에 죽었습니다.

    여포의 아내 엄씨의 말에 따르면 조조는 진궁을 어린아이처럼 귀하게 대했는데 진궁은 조조를 떠납니다. 이유는 스스로 의심을 품었다고 만 되어있습니다.

    진궁이 조조를 떠난 원인은 조조의 서주 대학살에 실망, 삼국지강의 에서 조조가 변양을 죽인일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진궁이 주군인 조조와 여포를 죽이려했는데 삼국시대에 흔하지 않은 배신인 점을 보면 그는 총명하고 똑똑하다기보단,

    그저 충의를 지키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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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지 진궁이라는 인물은 후한 말 조조,장막,여포를 섬겼다 모사 입니다. 자는 공대로 연주 동군 무양현 사람 입니다,

    진공의 성향 자체가 여포와는 딴판 이었고, 본인의 처사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여포의 충신으로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심지어 반란을 모의하시고 했으니 연의에서 충신으로 묘사된 진궁은 무리수가 있는 셈이지요.

    진궁은 강직하고 지혜가 뛰어난 인물이었는데요. 이러한 진궁이 젊은 시절 부터 명사들과 교류하며 조조의 밑으로 들어갔지만 조조에게 실망하고 배신을 하게 됩니다.

    진궁을 능력이 뛰어나지만 주군을 잘못 선택한 비운의 책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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