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 시대 위나라 하동(河東) 양현(楊縣) 사람. 자는 공명(公明)이다. 큰 도끼를 잘 썼다. 한(漢)나라 말 군리(群吏)로 있다가 양봉(楊奉)을 따라 기도위(騎都尉)가 되었다. 나중에 조조(曹操)에게 귀순해 비장군(裨將軍)이 되었다. 이각(李傕)과 곽사(郭汜)의 무리들이 어가를 낙양(洛陽)으로 옮길 때, 양봉(楊奉)의 수하로 나타나 용맹을 떨쳐 이를 본 조조가 부하로 삼았다.
뒷날 마초(馬超)가 장안성을 뺏고 동관을 공격했을 때 적의 구원병이 왔다고 할 때마다 조조가 좋아했는데, 의중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고 한다. 과연 일선으로만 병력이 몰린 마초의 군대는 뒤에 방비가 없었고, 이에 퇴로를 막아 공을 세웠다. 건안(建安) 24년(219) 관우(關羽)가 번성을 에워쌌을 때도 구원하여 명성을 날렸다. 삼국지연의에는 사마의(司馬懿)를 따라 제갈량을 막으러 가는 도중 전사했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 정사(正史)에는 병사했다고 나온다. 우장군(右將軍)을 지냈고, 양후(楊侯)에 봉해졌다가 다시 양평후(陽平侯)에 봉해졌다. 시호는 장(壯)이다.
출처 : 중국역대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