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왜 홍콩을 1997년까지 지배했나요?
보통 제국주의 시절에는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확보하고 나서,
식민지들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영구 지배하려고 했는데,
영국이 청나라와 협정을 맺을때, 왜 홍콩만은 1997년에 반환한다는 조건을 단거죠?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홍콩은 한꺼번에 모든 부분이 영국땅이 된것이 아니래요...
여러번에 나뉘어서.... 점점 영국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 졌다는 군요..
처음엔 지금의 홍콩섬.. 이란 곳을 영구임대 했습니다..
그 후에 다른 꼬투리를 잡아서 대륙에 붙은 지금의 헝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땅을 100년으로 기한으로 임대를 했는데요..
아시다 시피.. 말이 임대지 힘으로 뻈은거죠..
근데... 홍콩섬만으로는 홍콩 전체를 운영할수 없기에..
그냥 다 줘 버렸다고 하는군요....
대륙하고 연결된 부분에 홍콩을 유지하는 여러가지 기간망 시설들이 많이 있어서..
뭐... 발전소 같은 시설이...
홍콩섬만 차지하기에는 영국도 명분도 안서고... 유지하기에는
너무많은 돈이 들어서 그렇다는 군요..
만약에 영국이 보든 부분을 영구임대를 했더라면..
홍콩은 아마 아직도 영국 땅이었을듯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부 신계 지역의 조차가 1997년으로 끝남에 따라 1972년 25대 홍콩 총독 머레이 맥클레호스가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중국 측과 비공식 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영국 측에서는 신계 조차 기간의 연장을 정식으로 요청했지만 중국 측 대표인 덩샤오핑의 결사 반대로 무산되었고, 차차 홍콩 전역을 중국에 돌려주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영국으로서는 홍콩을 계속 점유하고 싶어도 달리 방법이 없었고 홍콩 행정구역을 보면 정식으로 할양받아 영구 소유권을 확보한 홍콩 섬 및 구룡반도는 이미 도심지역으로서 개발이 끝났고, 이를 배후지로 뒷받침하는 지역이 신계 지역입니다.
이상황에서 신계 지역의 99년 조차 기간이 끝나고 중국에 반환하면 홍콩에는 기존의 도심 지역만 남게되어, 홍콩의 자립이 불가능해집니다.
이 상황에 신계 조차의 연장이 무위로 끝나자 영국은 홍콩의 영구적인 점유는 더 이상 불가능한것을 인정하고 홍콩 전체를 반환하는 쪽으로 선회하였습니다.
중국과 협상을 맡게 된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도 처음에는 조차지인 신계는 반환하고 홍콩 섬과 구룡반도, 신구룡만 남길 생각이었으나 이 지역만으로는 홍콩의 자립이 불가능함을 알고 중국에 홍콩 전체를 넘겨주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된 배경에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작용했습니다.
1842년 영국과 중국 사이에서 나란히 서명된 "난징조약(Nanjing Treaty)"에 따라 홍콩은 영국에 양도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제일은행에 대한 불공정한 취급, 영국의 사원을 대우하는 중국의 불만, 그리고 영국 상인들이 중국의 관할 아래에서 적법한 소송 절차를 받지 못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체결되었습니다.
이후, 1860년에 중국과 체결된 "베이징조약(Beijing Treaty)"에서 영국은 홍콩 외에 위증 섬을 추가로 얻게 됩니다.
이후에는 중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분쟁, 그리고 청일전쟁 등의 여러 사건들로 인해 영국은 홍콩의 통치 권한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20세기 초, 중국에서 시작된 혁명운동들과 일본에 의한 침략 등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영국은 홍콩을 안보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게 되고, 1898년에는 99년간의 공영화약(租借條款)을 체결하여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게 됩니다.
이후,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중국 내부에서는 대규모 혁명운동과 국민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 내전이 일어난 뒤, 1949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홍콩은 분리돼 중국과는 다른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홍콩은 1984년에 영국과 중국이 서명한 합의에 따라, 1997년 7월 1일부로 중국에 복귀하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42년 제 1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홍콩섬을 청나라로부터 뜯어 냈지요 이후 2차 아편전쟁 에서도 승리한 영국은 1860년 북부의 구룡반도를 또 떼어내어 홍콩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했다고 판단은 영국은 1898년 신계 지구를 마지막으로 지금의 홍콩 영역을 확장했는데 마지막 신계의 경우 영구 소유가 아닌 99년 임차였으나 조약의 말미에 "영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써 놓았습니다 문서로는 99년 이지만 실제로는 신계를 포함해 홍콩 전체를 반환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었죠 그러나 1997년 7월 1일 영국이 속령이었던 홍콩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했는데 구 영국령 인도 제국의 독립에 이어 영국의 아시아 식민지배를 완전히 종료시킨 사건이머 이로써 대영제국이 완전히 해체된 사건이지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난징조약(南京條約)은 1840년 1842년 까지,2년간 벌어진 1차 청영 전쟁을 끝내기 위해 1842년 8월 29일 청나라와 영국과의 사이에 맺은 불평등 조약입니다. 이 조약으로 인해 홍통이 영국 수중에 넘어갔고, 상하이, 광저우가 개방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입장으로서는 이렇게 150년 간 충분히 홍콩을 이용해 중국을 약탈 해 갔고 국제적인 정세및 국내의 연론도 무마 시키위 위해 반환 조항을 두게 된 것입니다.
The Treaty of Nanjing is an unequal treaty signed between the Qing Dynasty and Great Britain on August 29, 1842 to end the First Qing-Ying War, which lasted for two years from 1840 to 1842. It is said that this treaty gave Hongtong to British hands and opened up Shanghai and Guangzhou. From the UK's point of view, it has used Hong Kong to plunder China enough for 150 years, and the return clause has been put in place to silence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nd domestic controver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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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아편전쟁 결과 청나라가 패해 난징조약을 맺게 됩니다. 개항을 하고 홍콩을 할양하게 됩니다. 홍콩을 영구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1999년까지 할양기간을 정했던 것입니다. 사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들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대부분 독립했습니다. 우리나라도 2차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하면서 독립하게 되었지요. 아시아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이 2차대전 이후 독립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홍콩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 난징조약과 식민지 독립의 흐름에 견주어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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