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그 이유는 무조건적으로 명을 섬기지 않고(이게 사대주의) 명과 후금 사이에서 소위 조선의 실리를 추구하는 '중립외교' 또는 '실리외교'를 행했었기에 사대주의에서 벗어나려 시도했던 왕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 반대되는 개념이 인조 즉위 후의 외교정책인 '친명배금' 즉, 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대외교를 하는 것으로써, 이것이 후금의 반발을 사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이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