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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9

만부교사건이 어떻게 된 사건인가요?

안녕하세요.

옛날 역사에 있었던 만부교 사건이라는 건 무슨 사건인가요?

만부교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그 당시의 시대상황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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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부교 사건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창업하고 난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만부교 사건은 거란이 사신을 보내서 고려와 국교를 맺을려고 했지만, 왕건이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과 국교를 맺을 수가 없다고 해서 30명의 거란사신을 섬으로 유배 보내고 사신이 가져온 낙타를 만부교라는 다리에 묶어서 굶겨 죽인 사건입니다. 만부교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지 않을까 하는 태조 왕건의 의심과 발해가 멸망하고 고려로 귀순한 발해의 유민들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합니다. 또한 거란이 고려와 화친을 맺으려던 이유는 송나라와의 전쟁과 관련해서 외교를 통해서 후방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고려가 지속적으로 반거란, 친송정책을 펼치자, 마침내 고려 성종 때(993년) 거란이 고려를 침략(1차침략)하게 됩니다.


    출처 - 지식백과 만부교사건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23.05.19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건은 942년 거란에서 사신과 낙타 50마리를 선불로 가져온적이 있었는데 이때 왕건은


    거란을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라 하며 사신은 가두고 낙타들은 만부교 밑에서 굶어죽게 만든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걸 만교부 사건이라고 칭하죠.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태조 재위 25년이자 요태종 재위 15년차인 942년 10월 거란이 세운 요나라는 화친을 위해 고려에 사신 30명과 선물로 낙타 50마리를 보냈지만 고려는 도리어 요나라의 사신들을 모조리 섬으로 유배보냈고 이 중 일부는 자살하거나 사약을 받아 죽었습니다.

    고려는 선물로 데려온 낙타 50마리를 개경 만교부 밑에 묶어서 굶겨 죽이는 것으로 화답해 양국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후에 거란이 3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는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명목상 이유는 고려 태조왕건이 거란과 발해는 원래 우호적인 나라였으나 거란이 갑자기 의심을 일으켜 발해를 무도하게 멸망시켰기 때문에 벌였다는 것인데 왕건은 거란에 대한 증오가 심해 거란을 짐승의 나라라고 비하했습니다.

    고려 태조가 한 실질적 이유는 발해 유민을 위해 거란 사신을 모욕하는 정치적 퍼포먼스로 당시 왕건이 발해계 유민들을 많이 받아들여 정착시키던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됩니다. 태조-혜종의 재위기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수백의 왕족과 고위급 관리를 비롯한 수만호의 발해인들이 귀부한 상황이였고 발해는 거란에게 멸망당했음으로 발해 출신의 유민들을 다독이려면 또한 그들이 변경지역에 배치됐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확실히 거란과 적대하겠다는 표현이 필요했습니다. 낙타를 단순히 도축하지 않고 굶주림을 잘 견디는 낙타를 물가인 다리 아래 묶어둔것은 낙타를 죽이기는 죽이되 되도록 오래 살려 그 의미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호족들이 사병을 거느리면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강성해짐으로 인해 이를 억제하기 위한 강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으로 거란과의 긴장관계를 통해 후삼국 통일 이후 호족들의 왕권에 대한 도전을 무마하고 중앙집권화를 꾀하려는 정치적의미입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 때 거란에서 보내온 낙타 50필을 만부교 아래에 매아놓아 굶어도 죽게 한 사건 입니다.

    만부교는 개경의 보정문 안에 있는 다리로 이 일이 있은 뒤로는 탁타교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926년(태조9)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주위의 여러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어가던 중 942년(태조25)에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낙타50필을 바쳐왔습니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 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습니다. 이로써 고려와 거란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으며 고려는 거란에 대한 적대를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태조 재위 25년이자 요태종 재위 15년차인 942년 10월, 거란이 세운 요나라는 화친을 위해 고려에 사신 30명과 선물로 낙타 50마리를 보냈다. 하지만 고려는 도리어 요나라의 사신들을 모조리 섬으로 유배 보냈고 이 중 일부는 자살하거나 사약을 받아 죽기도 했다. 그리고 고려는 선물로 데려온 낙타 50마리를 개경 만부교 밑에 묶어서 굶겨 죽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당연히 양국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후에 거란이 3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는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낙타 50마리가 당시 고려 수도 개경의 만부교 밑에서 굶어 죽어 만부교 사건이라고 한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