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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8

만파식적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한국 역사에서 나오는 만파식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만파식적을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역할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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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파식적'이란 세상의 온갖 파란(萬波)을 없애고 평안하게(息) 하는 피리(笛)라는 뜻. '적'이 곧 피리이기 때문에 줄여서 '만파식'이라고도 불렀다. 통일신라기 왕실에서, 정치적 불안이나 국난이 진정되고 태평성대가 오기를 염원하는 제례(祭禮)에 사용했던 피리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존하지 않으며, 전설과 관련된 유물도 출토되지 않아 실존하는 물건이었는지 의문이 있다. 아마도 박혁거세의 금척처럼 왕조의 훌륭한 통치를 비유하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만파식적 설화라는 말은

    삼국유사에 만파식적 관련 이야기가 꽤 나온다. 신라 신문왕이 즉위 후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와 가까운 곳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다. 신문왕 2년(682)에 해관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쳐 보니,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수성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보니, 바다 위에 떠오른 거북 머리 같은 섬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검은 옥대(黒玉帶)를 바쳤고, 왕에게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 왕이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만파식적을 한 번 불면 몰려왔던 적군이 물러가고 앓던 병이 나으며 홍수가 나든 가뭄이 오든 한큐에 해결해 버리는 이름값하는 킹왕짱 버프 아이템으로 신라의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특히 대일본 전용 결전병기 일본의 침략을 막는 효능이 있어 일본 사신이 1천 냥을 내고 한번 보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특이하게도 조령을 넘으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여 신라 밖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정절의 의미로도 해석되었다.[2]

    효소왕 때 분실했다가 다시 찾고, 이 만파식적을 찾는 과정에서 말갈족[3]에게 납치된 화랑 부례랑을 되찾아오는 등의 이적을 보여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으로 격을 높여 업그레이드 된 이름을 고쳤다고 하며, 효양의 가문이 대대로 보관하다가 아들 김경신에 물려주었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한다. 원성왕 때 일본이 2차례 만파식적을 노려서 왕이 더 창고 깊은 곳에 숨기도록 명했다.

    한편 삼국사기 악지에서도 대금의 원류에 관한 이야기로 만파식 설화를 간단히 소개하였으나 김부식의 사견으로, 이러한 설이 있으나 '괴이하여 믿지 못하겠다'고 부연했다.[4] 김부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설화적 기록은 배제하려는 괴력난신 술이부작 원칙을 견지했기 때문에, 악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언급은 했지만 부연설명을 한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만파식적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5.19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파식적은 세상의 온갖 파란을 없애고 평안하게 하는 피리라는 뜻으로 적이 곧 피리이기때문에 줄여 만파식이라고도 했습니다.

    퉁일신라기 왕실에서 정치적 불안이나 국난이 진정되고 태평성대가 오기를 염원하는 제례에 사용되었던 피리 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만파식적'이란 세상의 온갖 파란(萬波)을 없애고 평안하게(息) 하는 피리(笛)라는 뜻. '적'이 곧 피리이기 때문에 줄여서 '만파식'이라고도 불렀다. 통일신라기 왕실에서, 정치적 불안이나 국난이 진정되고 태평성대가 오기를 염원하는 제례(祭禮)에 사용했던 피리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파식적'이란 세상의 온갖 파란(萬波)을 없애고 평안하게(息) 하는 피리(笛)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만파식적에 관한 설화가 있는데,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7750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습니다. 682년(신문왕 2)에 해관(海官)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쳐 보니,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수성(守城)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였습니다.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보니, 부산(浮山)은 거북 머리 같았고 그 위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습니다.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이 피리를 불면 평온해져서, 만파식적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뒤 효소왕 때 이적(異蹟)이 거듭 일어나,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파식적'이란 세상의 온갖 파란(萬波)을 없애고 평안하게(息) 하는 피리(笛)라는 뜻. '적'이 곧 피리이기 때문에 줄여서 '만파식'이라고도 불렀다. 통일신라기 왕실에서, 정치적 불안이나 국난이 진정되고 태평성대가 오기를 염원하는 제례(祭禮)에 사용했던 피리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존하지 않으며, 전설과 관련된 유물도 출토되지 않아 실존하는 물건이었는지 의문이 있다. 아마도 박혁거세의 금척처럼 왕조의 훌륭한 통치를 비유하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