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이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고려시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의 모후산 일대에서 인삼을 재배한 것을 인삼 재배의 기원으로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더불어 경상북도 경주지방에서는 신라 소성왕 때와 고려 고종 임금 때 인공적으로 산양삼을 재배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삼이 부족해진 것은 고려시대 말부터였다. 중국과의 인삼 교역량이 많아져 민간의 공납 부담 증가로 인한 무분별한 인삼 채굴 때문이었다.
1724년 개경사람 박유철 등이 인삼 농사법을 개발했는데, 인삼을 재배할 때 햇빛을 가리는 이 방법으로 인삼을 대량 재배할 수 있었다. 이후 제주도를 제외한 전 국토에서 인삼 재배가 빠르게 확대되었다. 인삼재배기술은 우리 국토의 천혜적인 입지조건과 결합되어 우리의 인삼을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인삼을 수확한 땅은 최소 10년이 지나야 다시 그 땅에 인삼을 심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인삼이 땅의 힘을 많이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물인 인삼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외국과 많은 교역을 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799년, 신라에서 길이가 9척이나 되는 인삼을 발견하여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할 때 가져가 당나라 덕종 임금에게 주었는데 인삼이 아니라며 받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인삼 교역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우리 인삼은 일찍부터 중국으로 수출되는 교역품이었다. 당시 인삼은 재배삼이 아니라, 산에서 심마니들이 채취하는 산삼이었다. 인삼은 교역의 이익이 컸던 제품이었기 때문에 고구려는 백제로부터 양나라에 대한 인삼 교역권을 빼앗을 정도였다. 고구려, 백제는 물론 신라에서도 인삼을 수출하였는데, 734년 당나라에 수출한 인삼의 양이 한번에 200근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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