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인인 장바티스트 베시에르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프랑스군의 원수였던 장바티스트 베시에르는 조아킴 뮈라와 함께 나폴레옹 군 최고의 기병대장으로 그 시대 최강의 기병 사령관이었다는데요.
장바티스트 베시에르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베시에르는 1768년 8월 6일 프랑스 남동부의 소도시 프레사크에서 외과의사 마튀랭 베시에르와 앙투아네트 르모지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나 15세에 카오르의ㅏ 왕립 콜레주에서 공부를 시작한 그는 가업을 잇기 위해 몽펠리에의 의과대학에 진학하나 집안의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학업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의원에서 조수로 일했습니다.
1792년 2월 그는 혁명정부의 주도로 조직된 새 왕실근위대의 근위병으로 선발되어 파리에 상경, 근위대가 4개월만에 해체되어 파리의 국민위병 소속으로 편입, 8월 10일 사건 때 튈르리 궁을 탈출하는 귀족들을 돕다 반혁명파로 몰려 잠시 숨어지냈습니다.
11월 1일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 피레네부대에 자원입대하고 이후 동피레네군에 배속, 그가 소속된 제 22엽기병연대는 불루전투와 시에라네그라 전투, 피게레스 전투에서 많은 공훈을 세웠고 에스파냐와 전쟁이 마무리된 후 22엽기병연대는 이탈리아 방면군으로 재배치됩니다. 1796년 5월 30일 보르게토 전투에서 그의 활약을 눈여겨 본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 나폴레옹은 그를 사령관 경호대의 지휘관으로 임명, 이 경호대는 훗날 제국근위대 엽기병대의 모체가 됩니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도 경호대장으로 동행, 아부키르 전투에서 기병대장 조아킴 뮈라와 함께 용맹함을 보여주며 1799년 8월 17일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몰래 빠져나갈 때 몇몇 측근들과 함께 나폴레옹을 수행,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때에도 동행, 통령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은 베시에르를 새로 창설된 통령근위대의 부대장으로 임명합니다.
1800년 6월 14일 베시에르는 마고랭 전투에서 프랑수아 에티엔 켈레르만 장군을 지원하여 결정적인 순간의 기병 돌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그는 이 공적으로 준장으로 진급합니다.
1804년 5월 19일 나폴레옹은 베시에르를 원수로 임명, 제국근위대의 기병총감 직을 맡기며 1805년 2월 2일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그랑에글을 수여, 스는 소장으로 진급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았고 그때까지 사단급 이상의 부대를 지휘한 적이 없어 그의 원수 임명에 불만을 품은 장군들도 있었으나 1805년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그는 제국근위대의 행정과 운용 전체를 담당, 12월 2일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9000기의 근위기병대를 이끌고 러시아 근위대를 향해 돌격함으로 그의 통솔력을 보여줬습니다.
1808년 그는 에스파냐 방면군 제 2군단의 군단장으로 임명되어, 에스파냐 북부 지역을 장악하라 명받고 7월 14일 메디나데리오세코 전투에서 앙투안 드 라살 장군이 지휘하는 기병대를 활용해 숫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 이로써 에스파냐 북부 지역이 일시적으로 프랑스군의 통제하에 들어왔으며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르파트가 마드리드에 입성해 에스파냐의 왕좌에 앉을수있었습니다.
1809년 2차 오스트리아전쟁에서 뮈라를 대신해 예비기병대장을 맡아 아스페른- 에슬링 전투에서 기병대를 지휘, 이 전투 직후 나폴레옹으로부터 이스트라 공작 작위를 받았으나 7월 5일 ~ 7월 8일 바그람 전투에서 적을 향해 돌격하려는 순간 날아온 포탄에 맞아 부상을 입어 더이상 지휘를 할수 없게됩니다. 부상 치료를 위해 먼저 프랑스로 귀국한 그는 곧 영국의 왈헤렌 원정대 저지를 목적으로 벨기에 플랑드르로 파견되었습니다.
1810년 그는 에스파냐 북부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다시 에스파냐로 파견, 그러나 그는 포르투갈 방면군 사령관 앙드레 마세나 원수와 계속 갈등을 빚었고 1811년 5월 3일 푸엔테스데오뇨로 전투에서는 그와 제대로 협력하지 못해 웰링턴 공작이 지휘하는 영국군에 패하게 됩니다.
1812년 그는 러시아 원정에서 제국근위대를 지휘하지만 근위기병대는 말과 식량부족으로 기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들은 고로디노 전투에서 황제를 지켰고 베레지나 강으로 퇴각하는 아군을 엄호했지만 러시아 원정에 투입된 다른 부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1813년 그는 근위기병대를 포함한 전 기병대를 통솔하는 중요한 직위를 맡으나 뤼첸 전투가 일어나기 하루 전인 1813년 5월 1일 리파르 인근에서 정찰을 나갔던 그는 프로이센군 포병대가 날린 유탄에 맞아 흉부가 짓뭉개진채 사망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장바티스트 베시에르(Jean-Baptiste Bessières, 1768년 8월 6일~1813년 5월 1일)는 프랑스의 군인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제국 근위대 기병총감으로 활약했습니다.
베시에르는 1768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군에 입대하여 기병대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기병술과 용맹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1797년에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돌아온 후 베시에르는 제국 근위대 기병총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모든 전쟁에 참가하여 승리에 기여했으며, 특히 오스트리아 전쟁과 러시아 원정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습니다.
1813년 베시에르는 독일에서 벌어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는 4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