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本紀)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列傳), 통치제도·문물·경제·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志)와 연표(年表)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입니다.
기전체는 전한의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정형은 후한의 반고(班固)가 편찬한『한서(漢書)』에서부터 갖추어졌다. 이후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로서 편찬된 25사가 모두 기전체로 편찬되었다.
중국의 경우, 정사의 편찬은 한 왕조가 멸망한 뒤에 후속 왕조에 의해 전왕조의 실록을 기본 자료로 이용, 기전체로 편찬하는 것이 정례였다. 우리 나라에서 기전체의 역사는 고려 초기에 『삼국사』가 편찬되었으나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가 현전하는 최초의 것이다. 고려가 멸망한 뒤, 『고려사』가 기전체로 편찬되었다. 이들 사서는 국가에서 편찬한 관찬사서이다.
조선 후기에는 개인 학자들에 의해서도 고려 이전의 역사가 기전체로 편찬되었다. 16세기 말 오운(吳澐)의『동사찬요(東史纂要)』, 17세기 후반 허목(許穆)의 『동사(東事)』, 18세기 후반 이종휘(李鍾徽)의 『동사(東史)』를 들 수 있다.
허목은 단군·기자·위만·신라·고구려·백제는 세가(世家)로 하여 정통 국가의 역사로 썼고, 부여·숙신·삼한·가락·예맥·말갈 등은 부용적인 국가로서 열전으로 기록하였다. 이종휘는 단군·기자·삼한·후조선(위만)은 본기로, 부여·발해·가야 등은 세가로, 예맥·옥저·비류·낙랑 등은 역사적 인물과 함께 열전으로 기술하였다.
이는 세력의 크기에 따라 구분한 것이었다. 기전체는 역사를 군주와 그를 보필한 신하, 그리고 통치제도를 삼원적으로 파악하는 역사 기술이었다.
이처럼 하나의 자료가 내용에 따라 분류, 서술되어 참고하기에는 아주 긴요한 것이지만,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불편한 점도 있다. 그러나 비록 연대가 없는 자료까지도 모두 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전체 [紀傳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