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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양241
빼어난양24123.11.16

히틀러는 형편없는 무솔리니와 왜 손을 잡은건가요?

무솔리니의 군대는 여러 곳에서 전쟁을 패하고 이로인해서 히틀러는 이탈리아 즉 무솔리니를 도와주기 위해 전선도 분산되었고 이로 인하여 도움을 받기는 커녕 손실만 많이 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히틀러는 당시 형편없고 전쟁하나 제대로 못하는 끝까지 무솔리니와 손을 잡은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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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관계는 30년대 초만 하더라도 히틀러가 일방적으로 무솔리니를 선망하는 것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원래 무솔리니를 열렬히 추종했고 무솔리니의 정치 기법을 배우고 본받았다. 따지고 보면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총리 자리를 차지했을 무렵, 나치당(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은 그저 세계 각국에 있는 수많은 파시즘 정당 중 하나에 불과했고 히틀러도 베니토 무솔리니 워너비일 뿐이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초상화를 얻고자 이탈리아에 신청했다가 거절당하기까지 했고, 로마 진군을 흉내내서 벌인 뮌헨 폭동이 실패하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여하튼 베니토 무솔리니는 히틀러가 집권한 직후에도 그를 '시골뜨기 듣보잡(히틀러와 가까워지기 전엔 사석에서 정신나간 미치광이 혹은 위험한 바보로 칭했다고 한다)' 정도로 간주했다. 일례로 1934년,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의해 오스트리아 연방국의 수상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히틀러가 이것을 기회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려고 하자,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 병합을 시도하면 전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초강경한 경고 전언을 날렸고 히틀러는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의 희망은 4년 후인 1938년에야 안슐루스로 이루어졌는데, 이것도 무솔리니가 침략의 길을 걸으면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제국(에티오피아 제국의 후신)을 수립하고 독일과 손을 잡은 뒤였다. 스트레사 동맹의 허울을 이용한 팽창주의 결과였던 것이다. 무솔리니에 대한 히틀러의 이런 애정은 훗날 전쟁이 진행되면서 무솔리니의 돌출 행동에 따른 짜증, 애증으로 변하게 되었고, 이런 관계는 그들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