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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12

1980년대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피격 추락시킨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그것도 민간기를 피격한사건은 비인도적인 행위 인데요. 이렇게 소련이 비인도적 만행을 저지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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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항공 747기 피격사건은 타국의 항공기가 영공을 침범했다고 하더라도 민간항공기에 대해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국제관례를 무시한 것으로 전 세계로부터 규탄을 받았으며, 동서관계를 급속히 긴장시켰습니다. 사건 다음날 오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최되었고, 관련자 처벌을 주 내용으로 하는 5개항이 결의되었습니다.


    각국의 정부차원에서의 강경한 대응책 이외에도 민간차원에서는 국제조종사협회연맹이 대한항공기 격추에 대한 보복조치로 60일간 모스크바 취항을 중단하는 결의를 하였고, 각국의 조종사협회는 이 결의를 즉각 지지하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한 보복조치로 세계 80여 국이 공식적으로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였고 제재조치를 가한 셈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국가들은 소련여객기의 서방 취항과 서방여객기의 소련취항을 잠정 규제하고, 소련과의 운송협정 폐기, 전략물자 금수 등의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미국은 소련항공사와 거래를 중지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사고 항공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하여 항로이탈의 의문점이 풀리지 않았으며, 소련이 왜 한국의 민간여객기를 격추했는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아 그 사건의 과정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3년 9월 1일 0시 5분 무렵, 기체가 소련 영토인 캄차카 반도 북동쪽 상공에 진입하였다. 이때 소련 방공군은 기체의 진입을 눈치챘고, 미합중국 공군의 군용기라고 판단하였다. 오전 1시 30분에 007편은 소련의 영공에 진입하였다. 하지만 대응하기엔 기체가 캄차카 상공에 체공할 시간이 많지 않아 캄차카 반도에 배치되었던 소련 방공군 편대는 요격을 시도하지 않고 귀환했고, 007편은 오전 2시 28분에 소련 영공을 통과하고 소련의 레이더에서 사라졌다.[11] 하지만 오전 2시 36분에 대한항공 007편이 오호츠크해를 지나 다시 소련 영토인 사할린 섬 상공에 접근하였고, 이때 소련군은 경계태세에 돌입했다.[12]


    오전 3시 5분에 007편은 뒤따라오던 로스앤젤레스발 대한항공 015편[13]과 교신했고 서로 바람 방향이 다른 것을 알았다. 015편은 정상적으로 소련 영공을 피해서 날고 있었으므로 그랬던 것이지만, 007편 조종사는 비행계획서를 체크하고 오차 범위 안쪽이라고 판단하여 자신이 항로를 이탈한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곧이어 오전 3시 8분에 겐나디 니콜라예비치 오시포비치(Геннадий Николаевич Осипович/1944~2015)가 탑승한 사할린의 소련 방공군 소속 Su-15TM 요격기가 007편을 확인했다. 새벽 시간이라 아주 어두웠기 때문에 기종 식별은 불가능했고 항법등과 충돌방지등이 점멸하고 있는 것을 보고했다. 그러나 아예 형체만 보였던 것은 아니고 후일 오시포비치의 인터뷰에 따르면 꼬리의 민항기 마크 등을 식별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007편 격추과정에는 불운한 우연도 겹쳤다. 오시포비치의 전투기가 007편을 추격하면서 경고사격을 했지만, 야간이었던 데다 오시포비치가 탑승한 Su-15의 탄띠에 때마침 예광탄이 없어서 007편에서는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