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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이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1010년 40만 대군의 거란이 두번째로 침입하였습니다. 이무렵 양규는 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거란군의 포위 공격을 막아내어 흥화진을 사수하였습니다. 이후 통주에서 강조의 부하였던 병사 1,000명을 수습하고, 곧바로 곽주를 공격하여 거란군 6,000명을 사살하였으며, 성을 탈환하고 남녀 7,000명을 구출하기 까지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거란군은 개경을 함락하고도 후방이 취약하여 나주로 몽진한 현종을 추격하지 못하고 급하게 강화를 맺고 돌아 가야했습니다. 이후 귀주 방면으로 돌아가는 거란군을 무로대에서 2,000명을 베고, 포로 2,000명을 구출했습니다. 또한 석령에서도 거란군 2,500명을 베고 포로 1,000명을 구출해 냅니다. 이후에도 한달동안 거란군과 싸워 모두 7차례 싸워 적 6,500명을 베고, 포로 3만여명을 구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