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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30

소도라는 곳은 정확하게 어떤 용도로 쓰이는 장소였나요?

과거에 소도라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지배자가 있음에도 이곳은 침범하지 못했던 이유가 뭘까요?

그만큼 권력이 약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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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8.31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한에서 매년 한두번씩 한 동네마다 제사장인 천군을 선발해 제사를 올릴 장소를 선정하는데 이 장소를 소도 라고 합니다.

    소도는 성역이었으므로 당시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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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도는 현재 우리 민족의 민속에 나타나는 세 종류의 장간(長竿)을 의미하는데, 개인의 가정에서 경사나 기도를 드릴 때에 임시로 세우는 신간이자 마을의 동구에 건립하는 ‘솟대’, ‘거릿대’, ‘수살목’ 등이고, 셋째는 등과자가 자기 문전이나 산소 또는 마을 입구에 세우는 화주(華柱)이며 소도는 만주의 신간이나 몽고의 오보, , 인도의 찰주(刹柱)나 인타라주(因陀羅柱)와 같은 성격을 가지는데 곧 소도는 종교적인 일정한 성역이며, 그 안에 긴 장대를 세웠고 그것을 중심으로 제의가 행해졌기에 함부로 침범라지 못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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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한의 소도는 삼한의 제사방이 다스리는 관할 지역으로 신성지역입니다. 이곳에선 싸우거나 무장하는게 일제히 안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둑이 소도로 들어가도 못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솟대로 어디가 소도인지 표현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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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도의 존재를 전하는 기본 사료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이다. 이에 따르면 삼한의 소국에는 소도라는 별읍(別邑)이 있어 북과 방울을 매단 장대를 세워 놓고 귀신에게 제사했다. 또 도망자가 피신해 오면 잡아내지 못하여 도적질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소도를 설립한 뜻은 불교와 같지만 선악의 판별 기준은 불교와 달랐다고 한다. 여기서 삼한의 소국이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성장한 군소 정치집단을 말한다. 각각의 소국은 국읍(國邑)을 중심으로 다수의 읍락(邑落)으로 구성되었고, 읍락과는 다른 별읍(別邑)도 있었다.


    즉 소도는 방울과 북을 매단 장대를 세워 놓고 귀신을 제사하는 신성지역인 것이다. 이때 삼한에서 오월의 파종의례와 시월의 수확의례를 귀신에게 제사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귀신은 농경신으로 여겨진다. 또 장대는 어딘가에 계시던 농경신이 제사의 장소로 내려오는 하강 통로이며, 방울과 북은 농경신에게 의례의 장소를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소도는 세속적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신성지역, 즉 아실럼(asylum)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는 삼한사회 정치권력의 미성숙과 이로 말미암은 사회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소도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다. 우선 소도가 한자어인지 우리말인지부터가 논란거리이다. 즉 소도를 한자어로 보아 그 말뜻을 ‘소생부활의 길’(범죄자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는 곳)로 보는 설과 우리말로 보아 ‘높이 솟은 곳’ 또는 ‘솟대’로 풀이하는 설이 있다. 현재 마을신앙에서 볼 수 있는 솟대와의 관련성 여부도 논란거리이다. 소도에서 솟대가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소도와 솟대는 별개라는 주장도 있다.


    대전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농경문 청동기의 갈라진 나뭇가지들에 새가 한 마리씩 올라가 있는 그림을 소도로 해석하는 것도 소도를 솟대와 관련해 본 결과이다. 그리고 삼한 소국에는 천군(天君)이란 제사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천군과 소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즉 천군이 소도를 관할했다는 입장에 따르면 소도의 귀신은 천신을 뜻하는 것이 된다. 이에 비해 천군은 하늘을 제사하는 제사장이고 소도는 귀신을 제사하는 곳이므로 별개라는 입장이 있다.


    한편 소도는 자료와 여러 연구를 살펴볼 때 삼한시대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존속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은 「봉암사지증대사탑비(鳳巖寺智證大師碑)」에서 백제에 소도의례가 있다고 했고, 소도와 같은 신성지역이 불교 수용 이후 사찰로 변했다는 연구도 있다. 나아가 소도 유적을 찾는 노력이 있으며, 심지어 일본 쓰시마의 신역(神域)인 솟도(卒土)의 기원을 삼한의 소도에서 구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소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출처 : 한국민속신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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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도(蘇塗)는 삼한 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특수한 신성 지역, 곧 성지(聖地)이다.

    제단을 만들고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 산천에 제사를 올렸다. 삼한 사회에서는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매년 1~2차에 걸쳐 각 읍(邑)별로 소도에서 천군을 선발하여 제사를 지내었으며,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다. 이 소도는 매우 신성한 곳으로서 제사에 참석하는 자는 죄인이라도 처벌하지 않았다. 이 소도에는 큰 소나무를 세우고 신악기(神樂器)의 구실을 하는 방울과 북을 달아서 강신(降神)에 대한 안내 또는 신역(神域)의 표지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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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소도는 고조선의 수도였던 아사달의 북쪽에 위치한 신성한 장소로, 지배자가 있어도 침범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소도의 용도와 목적은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소도는 고조선의 종교적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소도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는 다양한 종교적 상징들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이는 소도가 제사를 지내고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합니다.


    둘째, 소도는 고조선의 영역을 표시하는 상징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소도는 고조선의 수도인 아사달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는 소도가 고조선의 영역을 방어하고 지키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셋째, 소도는 고조선의 왕권을 강화하는 장소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소도는 지배자가 침범하지 못할 만큼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는데요, 이는 소도가 고조선의 왕권을 강화하고 국민의 충성을 얻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소도의 정확한 용도와 목적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조선의 정치,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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