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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매아빠
윤자매아빠23.03.18

같은 성씨라도 파가 다른데 이런파는 왜 생긴건가요?

성씨를 보면 같은 성씨라도 다른파가 있고

각 성씨마다 어디 성 어디 성 이렇게 부른데

이러한 파는 어떻게 생긴건가요? 왜 성을 이렇게 파로 구분하는 건가요?

파라는 것이 우리 성의 뿌리인건가요?

남평 문씨라면 남평이라는 곳에서 시작됬다는 건가요?

이러한 성은 어떻게 생기게 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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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1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1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옛날에는 집성촌이라 모여사는데, 형제가 있으면 재산을 갈라줘야하는데 대개 종손이 대부분의 재산을 물려받습니다. 동생들은 그 곳에서 살 여력도 땅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일가를 이루면서 살게 되는 것이죠. 가까운 곳이면 그렇지 않으나 멀리 이주한 경우는 세월이 지날수록 촌수가 멀어지며 그쪽에 새로운 집안이 나오게 됩니다. 그게 본관 즉, 관향이 되는 것입니다.

    파는 중시조가 났을때 발생합니다. 즉, 아주 뛰어난 인물이 났을때 이 인물이 종손이 아닌 경우, 그 인물의 후손들 역시 독립적인 일가를 이루게 됩니다. 물론 그 정도라고 서로가 인정할만한 위치까지 올랐어야하고, 적어도 그 뒤로도 후손들이 몇 대에 걸쳐 그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겠죠. 대개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경우가 많습니다. 공신이나 지위가 높아져 파가 갈리기도 하고, 임금이 직접 내려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중시조로 하여 새로운 파가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파는 아직도 한 집안이라는 의지가 강하지만, 관이 다르면 다른 집안이라고 보는 겁니다. 물론 조상은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나라조씨 안에 한양조씨, 함안조씨 같이 본관이 다른 경우, 말로는 우린 다 친척이야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집안이라고는 잘 의식하지 않는데 반해 한양조씨 안에 다른 파인 경우는 파가 다르더라도 우린 같은 집안이야라는 의식이 상대적으로 매우 강하다는 겁니다.

    즉 좀 심하게 말하면 형한테 쫓겨난 갑부집 형제들이 다른 지역에 가서 살면서 관이나 파가 갈라지게 되고, 또 뛰어난 인물이 나면 중시조로 하여 파가 갈라지며, 더 뛰어난 인물이 나면 관까지도 새로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파나 관이 갈라지는 것은 보통 이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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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같은 성씨고, 본관이 같다 할찌라도 파는 여러개 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관은 그야 말로 뿌리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고요, 파는 한 사람이 높은 벼슬을 하였다든지 뭔가 뛰어난 일을 하였을때 파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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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성씨를 기준으로 본관을 붙입니다.

    본관은 대개 지명을 기준으로 붙여집니다.

    예를 들면, 전주 이씨, 김해 김씨, 남평 문씨라고 본관을 말합니다.

    파는 본관에서 후손들이 자신들의 중시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중시조의 관작명이나 벼슬 명을 기준으로 하여 붙이게 됩니다.

    정리하면, 본관은 대개 지명으로 붙이고,

    파는 조상의 관작명이나 아호, 시호 명을 기준으로 붙이게 됩니다.

    우리나라 성씨 체계가 정착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며,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같은 때에 국가 재정위기를 타파하려고 공명첩을 발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씨를 돈으로 사게 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성이 없는 사람들 모두가 원하는 성씨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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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질문자 님의 말씀처럼 그렇습니다.

    대부분 태어난곳에 본을 둡니다.

    예를들어 남평 문씨 자손이 나는 해주에서 났으니 해주 문씨로 할거야 하면 파가 바뀌고 그 자손은 해주 문씨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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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씨(姓氏) 제도는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역사 문화적 전통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형성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씨(姓氏)는 가족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부계(父系)

    혈통만을 표시하며, 경주(慶州) 김씨(金氏)와 김해(金海) 김씨(金氏)처럼 본관(本貫)과 성(姓)을 결합해 혈족(血族)의 계통을 나타냅니다.

    본관(本貫)은 성씨(姓氏)가 시작된

    시조(始祖)의 관향(貫鄕) 명칭이며,

    그 지역명인 본관(本貫)을 성(姓)과

    함께 써서 혈족(血族)을 구별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중시조(中始祖)에 따라 다양한 종파(宗派)를

    구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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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첫째 시조가 높은 관직이나 공신업적을 남겼을떄

    둘째 하나의 시조로부터 족보를 이어오다 보면 후손이 너무많아 일정시점이되면 자연스럽게 여러줄기로 나뉜다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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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성씨는 대개 가족이나 혈연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그룹을 나타내는 것으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씨의 파는 보통 공통의 조상을 기준으로 나뉘게 되는데, 이는 역사적인 배경과 지리적 환경, 가문의 분열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르게 형성됩니다.

    한 가지 예로, 조선시대에는 성씨의 파가 생길 때 공통의 조상을 기준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조선시대의 유명한 성씨인 이씨는 신라와 백제의 왕족 출신으로 이어지는 조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씨의 파는 대개 역사적인 배경과 가족 내에서의 변화에 따라 형성되었습니다.

    성씨의 파가 생긴 지역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평 문씨라는 경우 남평이라는 지역에서 비롯된 성씨로, 지역 이름을 따서 남평 문씨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씨가 파로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씨는 지리적 환경, 역사적 배경, 가족 내 분열 등에 따라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파로 나뉘지 않은 성씨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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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하나의 성씨에서 유래되었으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힘을 얻게 됨으로써 새로운 성씨를 만들거나, 새로운 본을 만드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힘을 얻어 개명하면 아예 새로운 성씨가 탄생하는 것이며, 본을 만들면 새로운 본관이 형성되는 식입니다. 파(派)의 명칭은 흔히 파조(派祖)의 관작명이나 시호또는 아호(雅號)와 세거지명(世居地名 : 대대로 사는 고장) 등을 따서 붙인다고 합니다. 족보(族譜)에서 파(派)를 찾으려면 계보도(系譜圖) 외에 세계도(世系圖)를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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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는 육촌이 연합해 만든 사로국이 고대국가로까지 성장해 결국 삼국통일까지 하였습니다. 이때 육부족은 최씨, 손씨 등 여섯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씨를 갖는다는 것은 부족을 표시하는 것으로 그 기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씨는 지배층만이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점차 확대되어 이제 모두 성씨가 있지요.

    그러다 고려 시대에 성씨가 확대됩니다. 신라는 박, 석, 김씨가 돌아가며 왕을 하다가 김씨 왕위세습이 내물왕 때부터 됩니다. 신라의 지배층은 골품제 하에서 골층이었습니다. 진골, 성골이죠. 통일신라 하대에 이르면서 중앙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 각지에서 호족들이 할거합니다.

    다양한 세력들이 있었고 궁예의 후고구려, 견훤의 후백제가 신라와 함께 후삼국시대를 이루지요. 이를 통일한 것은 왕건의 후고구려였습니다. 왕건은 각지의 호족들을 포섭 혹은 연합했습니다. 왕씨 성을 하사한 것도 한 정책이었습니다.

    성씨가 고려 시대 확대된 것이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강릉의 김순식 집안도 왕건과 연합한 호족이었는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될 수 있는 식입니다. 김순식이 자손을 낳고 장남은 대를 잇고 다른 형제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그렇게 되면 파가 갈릴 수 있습니다. 주로 인물을 이름붙여 무슨무슨공파 이런식이죠.

    조선 시대에 성씨를 갖는 것은 지배층인 양반인데 고려에 비해 많아집니다. 성씨가 더 다양화한 것이고 조선후기 양반수가 급증하며 더 일반화되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사라지며 성씨가 없던 농민이나 천민들도 성씨를 갖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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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성씨는 아주 오래된

    신화적 인물을 시조로 하여

    고려말의 유명인사를 중시조로 하여 무슨 파가 갈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말이후 조선시대에 유력인사가 되면

    족보의 편성과 조상숭배의 차원에서 여러개의 파로 점차 세분되는데

    무슨파로 많이 나누어진 성씨일수록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집안이고

    파가 나누어질수록 직계조상으로 가까운 인척이 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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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름과 성에 파가 존재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가족의 계보를 추적하고, 상속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에는 가족의 계보를 추적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이름과 성, 출생지, 출생일 등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가족의 계보를 추적할 뿐 아니라, 그들의 상속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성은 가족의 출신 지역이나 직업 등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이라는 성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씨 중 하나인데, 이는 원래는 경상도 지방에서 유래한 성씨입니다.


    현대에는 이러한 이유뿐만 아니라, 법적 문제와 신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이름과 성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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