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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3.23

영화 300에 나오는 크세르크세스는 어떤 왕이었나요?

영화 300은 스파르타가 주인공으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는 악역의 대장으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에는 어떤 왕으로 기록됐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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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3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아버지가 그 유명한 다리우스 대제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키루스 2세의 딸 아토사였으므로 결과적으로 키루스 2세의 외손자이다. 거대한 판도를 자랑하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을 맡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지방의 반란 세력을 토벌하고, 아버지가 못 이룬 그리스 원정 성공을 위해 3년간 원정을 준비했다. 그 규모는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170만이라는 괴물 같은 숫자지만 현대 추정에 의하면 대폭 감소하여 20~5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여하간 그리스보단 훨씬 많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시대적으로도, 특히 도시국가 위주인 그리스 국가들에겐 상상조차 어려운 규모였다.

    성경에 등장하는 현명한 유대인 에스더의 남편이자 페르시아의 황제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크세르크세스 대제다. 유대인을 몰살시키려다 에스더의 설득으로 그만두었다는 점 때문에 덩달아 대인배로 취급받는다. 단, 개신교에서 주로 쓰는 성경에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따라 아하수에로(Ahasuerus)라고 나오기 때문에 이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얼핏 봐서는 알기 힘들다. 성경을 읽어보면 에스더는 그리스 원정 전쟁을 기점으로 간택되기 시작했다가 그리스 원정 실패 후에 비로소 왕비가 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전 왕비가 폐위되고 에스더가 새로 왕비가 되는데 전 왕비인 와스디를 폐한 이유가 술자리에 불렀는데 안 나와서인데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고대에 여성이 남성들의 연회에 함께 하는 것은 고급 매춘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왕비가 모욕감을 느껴서 오지 않았다는 것 혹은 크세르크세스가 추구한 왕권 강화에 와스디가 심히 반감을 느끼고 왕권 강화책을 반대하는 의미로 불참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크세르크세스에게 예의를 어겼던 왕후에게 정치적 목적이 있었는지 논외로 하더라도 전국의 유력인사를 다 모아놓고 벌인 연회에서 왕비가 왕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무시한 셈이니 크세르크세스 입장에서는 모욕이라고 여길 소지가 있는 셈이다.

    출처: 나무위키 크세르크세스 1세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기원전 486년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했던 황제입니다. 당시 다리우스 왕의 차남이었으나 첫번째 아들의 장자 계승을 깨뜨리고 크세르크세스가 왕이 될 정도로 다리우스 황제의 환심을 샀던것 같습니다.

    다리우스가 죽고 나서 황제에 오른 크레르크세스는 당시 나이 30대중반쯤이었고 이미 통치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해서 즉위 후 당시 반란자가 지배했던 이집트를 정리하고 제국의 평화통치하고자 했으나 주변의 귀족 왕족들이 계속된 전쟁을 부추김에 따라 그리스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당시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그리스와 전쟁에 실익은 없었던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제국주의의 권위를 위해 행했던것 같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크레르크세스는 주변의 부추김에 쉽게 동화되는 성격이고 도발에 잘 응했으며 열정이 강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 또는 크세르크세스

    대제은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황제로 기원전 486년부터

    기원전 465년까지 페르시아를

    통치했다. "크세르크세스"라는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의 왕위를 그리스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 뜻은

    '영웅들의 지배자'라는 뜻이다.

    -출처: 위키백과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영화 300은 프랑크 밀러의 만화 '300'을 기반으로 하며,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페르시아의 대왕으로 기록된 인물은 크세르크세스 1세였습니다. 그는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4대 왕이었으며, 전성기에는 대규모 군사 작전을 이끌어 다수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린 역사적 이미지는 다소 복잡합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의 시대의 페르시아 왕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의 군사 작전과 행적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부족합니다.

    또한, 그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정말로 존재했는지, 혹은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지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화 300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역사적으로는 아닙니다. 이는 프랑크 밀러(Frank Miller)의 그래픽 소설 '300'을 영화화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크세르크세스는 고대 페르시아 아하메니드 왕조의 제5대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대왕 다레이오스의 아들이며, 전성기에는 그의 왕국은 인도에서부터 유럽의 일부 지역까지 확장되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부족한 출신에서 왕위에 오른 후, 군사적 재능과 전략적인 지혜로 그의 왕국을 강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그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비판이 있었으며, 특히 그의 친구들과 신하들 간의 배신도 있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의 죽음은 여러 가설이 있지만, 대개는 암살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아들들 간의 힘 다툼으로 인해 아하메니드 왕조는 약화되었고, 이후 막스시미니드(Macedonian Empire)와 전쟁을 벌인 후 멸망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영화 300은 프랑크 밀러의 만화 소설 '300'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된 고대 그리스의 테르모필라이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실제로 페르시아를 지휘한 지도자는 대왕 다레이오스와 그의 후계자인 아르타잔크스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대군의 지휘는 다양한 장군들에게 맡겨졌으며, 대왕 다레이오스는 직접 전장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또한,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는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에서 온 병사들도 함께 싸웠습니다. 따라서 이 전투는 스파르타의 혼자서의 승리가 아니라,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과의 협력 아래 이루어진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영화 300에서는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역사적 사실을 알고자 한다면 보다 전문적인 역사 서적을 참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제 8대 샤한샤로 아버지가 다리우스 대제, 어머니는 키루스 2세의 딸 아토사였으므로 키루스 2세의 외손자이며 거대한 판도를 자랑하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을 맡아 이지브와 바빌로니아 지방의 반란세력을 토벌하고 아버지가 못 이룬 그리스 원정 성공을 위해 3년간 원정을 준비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자신을 능멸한 바다에 채찍질을 300번하고 달군 쇳덩이를 던졌으며 자신의 아들을 병역에서 빼려고 한 신하의 아들을 요참시키거나 병사들을 강제로 동원해 바다 위에 다리를 놓는 등 폭군으로 묘사되었으나 사실여부는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ㄴ

    너무 재미있게 봐 ㅆ던 영화 300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그리스 침공을 주도하고 스파르타가 이끄는 그리스와 싸운 페르시아 왕은 크세르크세스 대왕으로도 알려진 크세르크세스 1세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486-465년에 아케메네스 제국을 통치했으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네 번째 왕이었습니다. . 그는 야심 찬 건축 프로젝트와 페르세폴리스 궁전 단지 건설로도 유명합니다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