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가체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선후기에 접어들면
가체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해서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로인해 금지령까지 만들어졌다는 기록을 봤습니다
어떤 것이 한시대에 유행을 하려면
분명 어떠한 이유와 시작점이 있을 것인데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가체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때문인가요?
가체는 여자의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거나 머리 모양을 꾸미기 위해 머리에 얹거나 덧넣는 딴 머리입니다. 흔히 '다레'라하며 한자로 '체(髢)’라 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성덕왕조에 '미체'라는 말이 나오는데, 신라의 명물로 외국에 수출도 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 원나라의 영향을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여성들의 가채는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체를 통해 화려하게 머리를 장식하며 미적 가치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영조 때는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로 대용하게 하는 가체 금지령을 내려 바로잡고자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서민들도 가체를 사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창백하고 하얀 피부가 유행이어서 비소까지 화장품에 넣어서 납중독으로 정신병이나 일찍 사망하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작은 발을 선호하여 전족으로 어릴때부터 뼈와 살을 억지로 비틀어서 장애를 만드는 것을 봐도 그러합니다. 현대에도 지방흡입이나 성형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구요.
옛부터 탐스럽고 풍성한 머리결은 미인의 척도였습니다. 그러하기에 덧머리인 가체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것이 미의 경쟁이 되다보니 기왓집 몇채가격까지 뛰기도 합니다. 결혼식날 맞절을 할 때 신부쪽에 옆에 두명이 붙어서 절을 돕는 것도 이런 가체무게로 인해 몸의 중심을 제대로 못 잡아서 그렇습니다. 또한 가채가 너무 무거워서 급히 일어나다가 어린 신부가 목뼈가 부러져서 죽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즉, 후기로 갈수록 가채로 인한 미에 대한 욕망이 심해져서 이런 재앙들을 낳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