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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15

잉카 문명은 언제 있었던 문명이고 어떻게 멸망했나요?

잉카 제국은 황금으로 유명하여 엘도라도라고 불린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 존재했었던 제국인가요?

황금의 나라라고 불리는건 알았는데 어떻게해서 멸망했는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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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잉카제국은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약 100년 간 남아메리카 일대를 다스린 대제국입니다.

    멸망의 원인으로는 스페인인들의 침략과 더불어서 전염병 및 내부분열 등으로 멸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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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잉카 제국, 혹은 타완틴수유[는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약 100년 간 남아메리카 일대를 다스린 대제국이다.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의 남북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군림하면서 남미 대륙 태평양 연안 대부분을 다스렸다. 현재의 페루, 에콰도르 서부, 볼리비아 남서부, 칠레, 아르헨티나 북서부, 콜롬비아 남서부 등 총 6개국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도 했다.

    잉카족은 12세기경 현재의 쿠스코 근방에 거주하던 부족이었다. 전설적인 지도자인 망코 카팍의 시대에 잉카 제국의 전신인 쿠스코 왕국이 세워졌으며, 정복군주이자 초대 황제인 파차쿠티-쿠시 유판키의 재위기에 인근의 창카족을 정벌하고 페루 지역 대부분을 빠르게 먹어치웠다. 쿠스코 왕국은 파차쿠티의 시대에 영토를 4방위로 나누고 지방관을 파견하는 등 소규모 부족국가에서 본격적인 제국으로서 탈바꿈했다. 파차쿠티가 1471년에 붕어하자 그의 아들인 투팍 잉카 유판키가 그의 뒤를 이어 치모르 왕국을 정복하고 손자인 우아이나 카팍이 에콰도르 남부까지 진출하면서 잉카 제국의 강역을 최대로 넓혔다. 잉카 제국은 북쪽 뿐만 아니라 남쪽과 동쪽으로도 확장 사업을 펼쳤으나, 남쪽에서는 마푸체족의 극렬한 저항으로 더이상 영토를 넓히는 데 실패했고 동쪽에서는 아마조니아 원주민들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포기했다.

    강대했던 잉카 제국도 우아이나 카팍 황제가 천연두로 붕어한 이후 형제들끼리 내전이 벌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황제의 두 아들인 우아스카르와 아타우알파 사이에서 제위계승전쟁이 일어났고, 제국은 두 쪽으로 갈라져 분열되었다. 그 상태에서 결정적으로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이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건너왔고, 168명의 스페인군이 옮겨온 전염균들에 면역이 없었던 잉카인들이 떼로 죽어나가면서 안그래도 약해진 잉카 제국은 더더욱 세력이 줄어들었다. 우아스카르를 내전에서 꺾고 황제에 오른 아타우알파는 잉카를 정복할 기회만을 노리던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계략에 휘말려 포로로 잡혔고, 몸값으로 방 하나를 2번 채울 정도의 황금을 바쳤으나 결국 풀려나지 못하고 처형되었다.

    아타우알파 황제가 교수형 당해 죽은 이후, 피사로는 후임으로 망코 잉카 유판키를 새로운 꼭두각시 황제로 추대했고, 허수아비 제국을 부여잡은 채로 남미의 재물을 약탈하고 본격적인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렸다. 망코 잉카 유판키는 처음에는 스페인인들에게 협력하는 체 하다가 결국 빌카밤바로 도망가 신잉카국을 세우고 스페인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 저항운동마저 최후의 사파 잉카인 투팍 아마루가 사로잡혀 처형당하면서 끝났고, 이후 남아메리카 지방은 스페인 제국의 혹독한 통치하에서 신음하게 된다.

    현대에는 마추픽추 등 험한 산꼭대기에 거대한 도시들을 세운 문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보통 황금과 보물이 넘쳐났던 신비한 고대 문명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다. 같은 아메리카 대륙의 아즈텍 제국이나 마야 문명과도 자주 혼동되는 편인데, 잉카 제국은 아즈텍 제국이나 마야와는 달리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세우지 않았으며 정글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건조한 산맥 지대가 주 터전이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잉카의 신왕(神王) 제도와 막대한 부를, 아즈텍의 호전성과 인신공양을, 마야인들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피라미드 등을 모두 모아 만들어진 가상의 문명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잉카와 아즈텍, 마야를 헷갈려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잉카 제국의 몰락 원인은 여러모로 멕시코 지역에 있었던 아즈텍 제국과 흡사하다. 중앙정부의 잔인한 학살과 폭정으로 반감을 사고 있던 와중에 스페인인들이 들어와 반란 세력의 구심점이 되었고, 잉카 제국은 거기다 내전 문제까지 겹쳐 그야말로 망하기 딱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잉카 제국은 아즈텍 제국보다 인신공양을 적게 했으므로 인신공양 풍습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47], 대신 반란을 일으킨 지역에서 모든 남자들을 학살하거나 인구의 절반 이상을 쓸어버리는 등 잔인한 보복은 오히려 아즈텍보다 더 심했다. 다만 잉카 제국이 무작정 사람들을 죽여대는 살인 국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잉카인들은 기본적으로 영토를 확장할 때에 평화로운 외교술을 선호했고, 언제나 친선 사절을 먼저 보내 복속 여부를 물었으며 평화적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그렇게 했다. 하지만 반란을 일으키거나 자신들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얄짤없이 잔혹하게 보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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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잉카 문명은 1200년경 부터 제1, 2왕조 쿠스코 왕국과 1438년부터 잉카 제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수도 쿠스코에는 거대한 태양 신전이 있었고, 금속기의 발달이 늦었으나 역법, 직물업, 건축술 등이 발전하였습니다. 잉카인은 새끼줄 매듭(키푸)으로 숫자와 의사를 표시하였고, 계단식 밭에 옥수수와 감자 등을 재배하였습니다. 번영을 누리던 잉카 제국은 1532년 11월 에스파냐의 피사로 침략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잉카의 멸망 과정은 허무게 무너집니다.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는 이복 형제와 전쟁 중이었는데, 7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데도 황제는 피사로 탐험대(168명)의 계략에 포로가 됩니다. 황제는 피사로 일행에 금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금을 가져다 받쳤습니다. 그러나 피사로 군대는 황제를 죽였으며, 잉카 제국도 멸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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