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명 후보가 다양했다고 하는데요
대한민국이란 국명을 정하기 전에 후보가 다양했다고 하는데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그 중 조선공화국이 있다고 하는데 만약 이 이름으로 결정되었을 경우
현재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8년의 제헌국회의 헌법기초위원회(30명)의 국호 결정을 놓고 표결한 결과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로 대한민국이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광복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선포한 정부 명칭은 '조선인민공화국'이었습니다.
만약 '조선공화국'으로 정해졌다면, 애국가의 후렴구에 '대한 사람~~'이 '조선 사람~~', 북한을 '북조선' 등등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강제 병합 이후 비밀결사형태의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여러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주제와 관련 있는 사건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대규모 민족해방운동입니다.3·1 운동은 현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역사적 기원으로 임시정부의 설립 주체인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장 이동녕)이 1919년 4월 10일 밤 10시 중국 상하이에서 개원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 조를 철야 심의한 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이때 국호도 정했는데,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신석우(申錫雨) 선생의 의견이 지지를 받아 국호가 대한으로 정해졌고, 주권이 황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있다는 의미로 백성 민(民)자가 붙어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 유엔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선거인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했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했습니다.참고로 당시 총선거에는 만 21세 이상의 유권자 813만2517명 중에서 96.4%에 해당하는 784만871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재됐고, 이중 95.5%가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