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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1.23

고려말에서 조선초 무신인 유만수 인물에 대한 업적 좀 알려주세요.

가족들과 경기도 양주쪽에 문화재가 있어 들렀다가 우연히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유만수선생묘를 간적이 있는데요. 고려말에서 조선초 무신이라고 하던데 어떤 역사적 업적이 있는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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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바고트리니다
    토바고트리니다24.01.27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말 조선초의 무신으로 활약하며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여 적군 10만 명을 격파했습니다.

    1392년 요동 정벌에 참여하여 여진족을 물리쳤습니다.

    1394년 사도 정벌에 참여하여 왜군을 격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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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만수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무신으로 본관은 문화이며 자는 득휴입니다. 유만수는 고려 공민왕 때에 보마배행수 되었고, 장군 등 무관직을 두루 거쳐 전법판서에 이르렀습니다. 우왕이 즉위한 직후에는 밀직 부사와 조전원수가 되어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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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류만수는 고려 공민왕 시기에 보마배행수(寶馬陪行首)에 임명되고, 1363년 장군(將軍)에 올랐으며 여러 무관직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우왕 초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습니다. 1377년(우왕 3) 왜구가 쳐들어오자 이성계, 임견미, 변안렬 등과 함께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황해도 각지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습니다. 1378년 12월 동북면으로 파견되어 호구(戶口)를 점검 계산했으며 1383년(우왕 9) 2월 경상도원수(慶尙道元帥) 겸 합포도순문사(合浦都巡問使)에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해도부원수(海道副元帥) 정지 장군과 함께 남해 관음포(觀音浦)에서 왜적을 무찔렀습니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여 개경의 숭인문(崇仁門) 방어전에서 최영(崔瑩)에게 패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 1) 절제사(節制使)가 되어 이방과(李芳果 ; 후일의 조선 2대 정종 임금)와 함께 해주(海州)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궁시(弓矢)를 하사받았습니다. 이어 문하평리상의(門下評理商議) 겸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 되었으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습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더하여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고, 1393년(태조 2) 회군공신 1등에 추록(追錄)되면서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에 이르렀습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석 편에 섰다고 하여 이방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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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사 세가 및 류만수 열전, 고려사절요 연대기, 조선왕조실록 연대기 및 류만수 졸기에 의하면 류만수는 고려 공민왕 시기에 보마배행수(寶馬陪行首)에 임명되고, 1363년 장군(將軍)에 올랐으며 여러 무관직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우왕 초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다.

    1377년(우왕 3) 왜구가 쳐들어오자 이성계, 임견미, 변안렬등과 함께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황해도 각지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1378년 12월 동북면으로 파견되어 호구(戶口)를 점검 계산했으며 1383년(우왕 9) 2월 경상도원수(慶尙道元帥) 겸 합포도순문사(合浦都巡問使)에 임명되었다. 당시 해도부원수(海道副元帥) 정지 장군과 함께 남해 관음포(觀音浦)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여 개경의 숭인문(崇仁門) 방어전에서 최영(崔瑩)에게 패퇴하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 1) 절제사(節制使)가 되어 이방과(李芳果 ; 후일의 조선 2대 정종 임금)와 함께 해주(海州)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궁시(弓矢)를 하사받았다. 이어 문하평리상의(門下評理商議) 겸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 되었으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더하여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고, 1393년(태조 2) 회군공신 1등에 추록(追錄)되면서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에 이르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석 편에 섰다고 하여 이방원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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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만수 선생은 조선 중기에 군사와 문화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사적 업적뿐만 아니라 문화와 교육에도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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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만수 장군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무신으로 활동한 분입니다. 고려시대 공민왕 때 보마배행수에 올랐고 장군 등 무관직을 두루 거쳐 전법판서에까지 올랐습니다. 1374년 우왕이 즉위한 직후 밀직부사를 지내고 왜구가 침범하자 이성계 임견미 등과 함께 조전원수가 되어 왜구를 소탕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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