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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이라는 고사성어는 어디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난한 사람이 반딧불과 눈빛으로 공부하여 고생 속에서 이룬 공'이란 뜻으로, 어려움을 이겨 내고 공부하여 얻는 보람을 이르는 말입니다.후진(後晉)의 이한(李瀚)이 지은 <몽구(蒙求)>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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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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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 장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어떤인물인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등등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최윤덕은 본관이 통천(通川)이며 자는 여화(汝和)백수(白修), 호는 임곡(霖谷), 시호는 정렬(貞烈)이다. 그는 고려가 무너지기 직전인 우왕 2년(1376)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에서 최운해(崔雲海, 1347~1404)와 창원 이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대마도 정벌2.이만주 정벌파저강 인근의 여진족 이만주를 정벌하고 평안도에 4군을 설치하는 공을 세운다.3.축성도감설치의 공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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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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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 1호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의 기악연주와 노래·춤이 어우러진 궁중음악의 정수로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은 현재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어 있다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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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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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은 스승인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하였나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드라마의 내용과는 실제로 다릅니다. 유의태라는 인물도 허구라고 알고 있습니다.재미있게 하기위하여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며 그당시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학문 /
철학
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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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안에 화장실이 정말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거북선은 조선시대 전투선입니다.그때는 그런 개념이없었을 것입니다.바다에다 일을 보았으리라 짐작 됩니다.그시절은 도성에도 상당히 더러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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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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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의 삼민주의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민주의는 쑨원이 발표한 초기 중화민국 정치 강령으로, 민족주의(民族主義), 민권주의(民權主義), 민생주의(民生主義)를 뜻한다. 삼민주의는 건국 초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화민국 정치 사상이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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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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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사형집행인의 사회적 지위는 어땠나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형집행인은 그 직책에 임명되면서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드러나게 하는 옷차림을 해야만 했다. 이는 사형집행인이 핏빛처럼 붉은 옷을 입고 모자를 써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사형집행인은 자신이 처형하는 죄수에 대한 권리도 있었다. 사형수가 사형집행인에게 인도되는 순간부터 집행인은 모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목숨뿐만 아니라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권리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속옷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또 사형수가 처형된 순간부터 부패될 때까지 사형 공시대에 전시해야만 했다. 이때 일반인들이 사형수의 물품을 구하기 위해 왔는데 그것은 사형집행인이 임의대로 처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사형수의 피나 옷 조각을 특별한 효험이 있다고 믿어 그것을 얻으려 하였다. 사형집행인은 이것을 일반인들에게 팔아 가외 수입을 올렸는데 이는 합법적인 것이었다. 사형집행인은 자신의 일을 돕기 위해 두 명의 시종을 고용할 수도 있었다.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고 합니다.그러나 귀족들의 특권이었던 죽음은 단번에 목숨을 끊지 못한다면 그또한 사형집행인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어울려 살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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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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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기축통화가 끝나는 날은 언제일까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답변자로서는 어려운 답변입니다.그러나 언젠가는 페러다임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새로운 화폐도 등장했으니 두고 볼일이라 판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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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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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소주 역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반도에는 고려 충렬왕 때 쿠빌라이 칸이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진출할 때 전해졌다고 한다. 특히 몽골의 주둔지이던 개성, 전진 기지가 있던 안동, 제주도에서 소주 제조법이 발달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공민왕 때 경상도 원수(元帥) 김진(金鎭)이 소주를 좋아하여 명기(名妓)와 부하를 모아 소주도(燒酒徒)가 되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기록이다.한국 현대 소주의 직접적인 뿌리인 안동소주는 이 시기 몽골의 물류기지가 있던 안동시에서 자조주로서 시작되었다.소주는 전통적으로 발효된 곡물을 증류하여 만든다. 증류소주의 청주는 보통 약 15일 동안 발효되며, 증류 과정은 여과되고 성숙한 청주를 소주 고리를 위에 얹은 솥에 넣고 끓인다. 1920년대에는 3,200개 이상의 소주 양조장이 한반도에 존재하였다.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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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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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낫게 하려고 불교의 약사불 앞에 절 올려 사대부를 놀라게 했다고 하는데, 조선에서 임금이 불상에 절은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일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답변자로서 주관적으로 답을 드리겠습니다임금도 신앞에서 미물입니다.임금역시 나약한 본인의 모습에서 유교면 어떻고 불교면 어떠하겠습니까,그저 기도하는 것이 절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임금이 하는것은 모두 정당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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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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