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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토미가 임진왜란 출전 안 한 이유?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이 동원한 병력이 워낙 많아서 초기부터 원정나갔으면 격침은 못했을 겁니다.당시 이순신 장군님은 아직 전라도만 담당하셔서 일본군에 대응 못했어요하지만 나라 통일한 직후이기 때문에 애초에 지도자가 원정나가는건 말도안됩니다인터넷이 있는 현대가 아니기 때문에 지도자가 멀리 갈 수록 본토 통제가 느려지는데그러다가 남아있는 반란군들이 날뛰면 그대로 끝장이니까요물론 그렇게 따지자면 임진왜란에 동원한 병력수도 말도안되는 결정이긴 한데도요토미는 천민출신(추정, 최소한 귀족은 아님)이라 국제사회 관련 교육을 못받은 반면전국시대에 실전으로 구르면서 일본국내관련은 확실하게 배웠기 때문에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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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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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킴플레이션이란 무엇을 말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스킴은 쪼잔하단 뜻의 영어고 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을 뜻합니다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구요다시 말해서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는데물건과 서비스의 질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기업이 자주하는 쪼잔한 짓을 스킴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과자봉지에 질소가 계속 늘어나거나 하는게 대표적인 스킴플레이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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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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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 팥을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지 팥죽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팥은 예로부터 악귀예방의 힘이 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콩 종류라서 단백질도 있고, 귀한 단맛을 느낄수도 있는 팥이 겨울 영양식으로 딱이기도 하고붉은 색이라 귀신이 싫어할꺼 같은 느낌이라서 동지팥죽을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옛날에는 모든 병과 사건 사고는 전부 귀신때문으로 생각했는데겨울엔 특히 몸을 다치는 사고가 터지기 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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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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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산타클로스는 언제부터 등장을 하게 된건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4세기에 실존인물인 성 니콜라오스는 물건을 나눠주는 자선사업으로 유명한 인물이었고이것에서 유래한 "선물나눠주는 성 니콜라오" 축제가 12세기 무렵 프랑스수녀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그후 아메리카 이주가 시작된 17세기 무렵 "세인트 니콜라오스"의 네덜란드발음을 영어사용자들이 잘못 들으면서 산타클로스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까 12월 초의 성 니콜라오스 축제가 12월 말인 크리스마스에 통합당해서선물 나눠주는 성탄절이란 개념이 생겼습니다.이렇게 통합당한게 19세기로 추정되고 있죠.아마 추운 겨울에 힘든 축제 여러번 하기 힘들었던거 아닐까요?성 니콜라오스가 19세기 기준으로 1500년 전 사람이다 보니까 다양한 디자인의 그림이 존재하고 있었는데현재의 뚱뚱한 빨간옷 산타의 이미지는 코카콜라가 1931년에 마케팅에 써먹은 것이 시작으로,추기경 옷에서 빨간색을 강조,12월 추우니까 털옷,풍성한 거품을 상징하는 흰 수염, 엄청 유복해 보이는 뚱뚱한 체형 등등의 주문을 받은 화가 J.헤든 선드블론이 그린 것이고마침 비슷한 시기에 동화작가 로버트 메이가 "빨간코루돌프" 를 발표하면서 둘이 엮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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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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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왕들에게는 묘호가 따로 없는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묘호라는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 통일 신라시대에서 부터 때문에그 이전의 나라에는 묘호가 없거나 관련기록이 사라져서 연구가 불가능합니다다만, 시호는 확실하게 있었습니다 그런 xx왕같은게 다 시호입니다.광개토대왕 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줄임말인데 이런걸 평소에 이름쓸 수는 없겠죠?현대에도 선생님 이름을 함부로 못부르는데 고대에 왕이름을 함부로 부를 순 없으니까살아있을땐 폐하, 전하 이런식으로 불렀고, 죽어서도행적을 평가해서 칭호를 붙여준 거에요. "문무왕=문과 무과 다 잘한 왕" 이런거죠광개토대왕의 본명은 고담덕, 문무왕의 본명은 김법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유일하게 의자왕은 자기때 나라가 멸망당해서시호를 못받고 그냥 본명써서 의자왕이긴 합니다묘호와 시호의 차이는, 간단히 말해서 묘호에는 쓸수있는 한자같은 규칙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서 무조건 x조 x종 이런 식으로 붙여야 하는데시호는 그런거 없어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같은거도 맘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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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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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동의단지회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지회 활동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기 때문에 안중근 열사의 행적을 빼면일원은 물론 활동또한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 암살을 시도한 안중근의사만이 유일하게 확정된 단지동맹원인데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취조과정에서도 가명을 대거나 하는등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셨습니다.그 당시에는 독립운동가는 들키면 바로 고문전향 또는 죽음이었으니까요사실 이부분은 대부분 독립운동가 분들께 공통되는 점이고후대의 연구가 힘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죠.대부분의 독립운동사 연구는 광복직후 생존자 분들이 남아계셨을때의 기록과일제의 체포기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다시 말하자면, 광복전에 전멸한 조직이거나 북한관련이라 군사독재때 조작당했을 경우는연구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죠다만 현대에 와서 연구가 진행되면서김기룡, 강창두, 황병길, 조응순, 강순기, 백규삼, 그리고 갈화춘 이렇게 7분이아마도 단지동맹원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으며특히 조응순 께서는 일제에 체포되었을때 약지가 없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반쯤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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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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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손가락을 끊은 일에 대해서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죽음을 각오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지요신체의 훼손으로 자기표현 하는건 매우 흔한일 입니다문신부터가 바로 그런 의미로 시작된 문화니까요의료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현대에도 손가락 한마디를 재생시키는게 최신 연구이니과거에는 이런 상처는 절대 지울 수 없는 상처였습니다.다시말해서 내가몸에 상처를 내면서 한 결의도 지워지지 않을 거라는 다짐이기도 하죠손가락 자르는 정도를 못버틸 놈이라면 일제의 고문도 못버틸 거기도 하구요약지를 고른 이유는 신체적 활동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라고 연구가 되어 있지만굳이 자를 부위를 손가락으로 고른 이유는 생존하신 독립운동가님이 안계시니알수가 없지만. 몸의 다른 부위랑 다르게 항상 들어나는 부위라는 점도 있고혈서를 쓰는 과정에서 어차피 손가락에 상처를 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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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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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상대방 이름을 나타내는 다양한 호칭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명은 임신사실을 쉽게 검사할수 있게 된 후에야 생긴 풍습이기 때문에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아명은 말그대로 아이일때의 이름입니다.의료기술이 덜 발달한 옛날에는 아이가 너무 쉽게 죽었기 때문에어린 아이에게는 정성들인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요너무 예쁜 이름을 붙이면 귀신이 귀한것인 줄 알고 데려갈거란 믿음 때문이었죠어느정도 자란 뒤, 대부분 돌잔치 이후에야 정식 이름을 받았습니다자는 어른이 된 증명으로 받는 새이름이고호는 충분한 능력을 증명했거나 업적을 세운사람이 받는 것 입니다.이름을 귀하게 여기는 풍습은 전세계적으로 있었기 때문에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도록 자를 받는 것이고특별함을 증명한 사람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호를 추가로 받는 것이죠이렇게 설명하면 뭔가 대단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현대에도 똑같은 풍습이 있습니다.선생님이나 부모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진 않자나요? xx선생님 이렇게 부르죠?그리고 대단한 사람들은 xx좌 같은 별명이 생기고이게 호, 자랑 같은 겁니다현대인이 보기엔 다양해 보여도 당시사람들 한테는 전혀 아니었을 겁니다자라면서 당연하게 배우는 것 이니까요.한국인은 쉽게하는 존댓말이 외국인한텐 말 2개 배우는 느낌인 것과 같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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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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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태동한 유학이 유교로까지 발전하게된 원인은?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선 이것 부터 알고 가셔야 합니다.종교가 다른 분야랑 분리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옛날에는 종교=세계관=과학=철학=도덕=법 이런 느낌이었습니다그러니 유학에서 유교로 변화된 지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도 구분이 힘들어요또한 현대식으로, 구체적으론 서양이 구분한 각종 분야 구분으론 유교와다른 종교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입니다그러니 이 질문은 종교가 된 이유라기 보단 사회의 주류가 된 이유라는 뜻으로 여기고 설명 시작하겠습니다.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스러운 배경에선 누구나 "왜 이러고 사나" 정도의철학적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온세상이 전쟁터였으니 까요그리고 전쟁때문에 기존의 지배계층이 철거당하면서재능과 여건이 충분하다면 새로운 지배층이 생겨날 가능성이 생겼고이 새로운 도전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사용할 새로운 통치도구가 필요해졌습니다때문에 당시에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것이 바로 최고의 통치도구다"라면서 자기가 만든사상을 알리려 했고, 그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이 바로 바로 제자백가 입니다.제자백가의 사상은 대표적으로 10개 학파가 있었는데 수 있었는데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도가마치 기독교의 아가폐 처럼, 평등한 사랑으로 고통을 없애자는 묵가강력한 법을 세워야 한다는 법가정교한 논리를 추구한 명가군사전략을 연구하면서 이것을 실생활에도 활용하자고한 병가외교적인 노력으로 세력 통일을 시도한 종횡가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농가이야기꾼 모임인 소설가마지막으로 모든 제자백가의 사상을 모으면 완벽할꺼라는 잡가이렇게 10가가 있었습니다물론 이것은 후대에 편의를 위해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실제로는 같은 "가"에 속한 사람끼리도 아예 교류가 없거나 서로 다른 주장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하지만 답이 너무 길어지니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겠습니다.소설가는 아예 후대에 종횡가,농가,잡가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면서나머지를 모아 추가한 느낌이니 춘추 전국시대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도가와 묵가는 계급제도를 버리자고 주장했으니 지배층에게 쓸모가 없고종횡가와 병가, 명가, 농가는 각자의 분야에선 뛰어나지만모든 경우에 통할 "통치철학"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느낌이 이었습니다.그러니 남은 것은 유가와 법가 뿐이죠. 잡가는 단독분야라기엔 좀 애매 하니까요.그런데 법가는 강력한 군주의 엄격한 통치를 추구한 사상이었습니다.그리고 현대의 독재자 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런 중앙집권적 사상은 완벽한 철인이 아닌이상매우 타락하기 쉽죠.유가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식으로 다른 라이벌들의 단점이 워낙 치명적이라유가를 연구하는 유학이 후대의 주류가 되었고. 유학이 다른 학파의 사상또한 받아들이면서발전하면서 유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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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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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그림은 어떤 그림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예전에는 유럽지역에서 발굴되는 기원전 1만년~2만년 사이의 그림들이 제일 오래된 그림이었지만 그 후로 연구,발굴이 계속 되면서기원전 7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남아프리카의 #모양 낙서가 일단 따지자면 낙서도 그림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동물이나 사람같은 구체적인 모양을 기준으로 한다면 최근에 인도네시아에서 발굴된 기원전 4만년전으로 추정되는 돼지그림이 제일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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