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사람들의 생활은 어땟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조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라오닝 지방에 지배하였습니다. 주요 유물로 청동기, 미송리식 토기, 고인돌에서 그들의 생활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군왕검이 지배한 것으로 보아 제정일치 사회였습니다.고조선 사람들의 생활은 8조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8조법에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것으로 보아 생명을 중시여겼으며, 다른 사람을 곡식으로 같는다에서 노동력을 중시하고, 농경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것으로 보아 사유재산과 신분제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정조가 있으며, 가부장적 사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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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 금육일에 고기를 먹다 적발시엔 어떤 처벌이 내려졌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세 유럽에서 금요일, 사순절, 대림절 등 금육일에 고기를 먹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육식을 금지하였어요. 고기를 먹으면 죄가 되어 비난받거나 배척당했으며, 교회의 징계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3세기 영국에서 금육일에 고기를 먹으면 3파운드의 벌금을 물었다고 합니다. 15세기 프랑스에서는 공개적으로 채찍을 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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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근대화 될 때 갈등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은 미국의 페리 제독 함대의 포함외교으로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후 막부의 굴욕적인 대외 정책에 존왕양이 운동을 일어났으며, 결국 1868년 왕정복고에 의해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었습니다.메이지 유신 추진 과정에서도 '화혼양재'의 온건적인 개화 주장과 '문명개화론'의 급진적인 개화 정책이 충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한론을 놓고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주역들 사이에 대립하다 서난 전쟁이 벌어졌으며, 자유 민권 운동을 탄압하고 1889년 천황 중심의 헌법을 제정하고 1890년 제국 의회를 설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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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중세까지 유럽에서 청어가 중요한 생선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세에서 육식을 금지하는 금육일에 생선은 허용되었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청어는 신선하게 먹을 수도 있고, 염장하거나 건조, 훈제, 통조림으로도 먹을 수 있고, 보관과 운송에 유리했습니다. 또한 청어는 빵과 함께 먹거나 소스와 양념을 곁들이거나 스프나 파이 등에 요리에 활용합니다.청어는 유럽의 무역과 경제에 중요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염장 청어를 수출하여 부를 축적하고, 한자동맹은 청어잡이를 통해 무역 동맹을 구축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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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독교 중심이었던 유럽에서 금육일이 얼마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금육일이란 육식을 금지하는 날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갖기 위해 금육일을 지킵니다. 교회법에 따르면 모든 금요일, 재의 수요일, 성금요일에 금육재를 지켜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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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상징은 독수리인데 독수리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독수리는 로마 제국의 상징이고 황제의 상징입니다. 로마는 건국 신화에서 로물루스, 레무스가 도시 건설을 결정하기 위해 새점을 치는데, 팔라티노 언덕에 12마리 독수리가 날아 올랐다고 합니다. 로마 군대도 군단별로 각각 독수리 장식된 깃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는 독수리를 자신 문장으로 그리스에서 제우스와 연관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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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은 왜 동물의 형상을 띄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집트인들은 자연과 동물을 숭배했으며, 신들에게 동물의 특징과 능력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매의 머리를 가진 태양신 '라', 개의 머리를 가진 전쟁의 신 '아누비스'가 그 것입니다. 신들을 동물과 혼압하여 표현함으로써 인간보다 뛰어나고 신비한 존재임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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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 이란 말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져 불리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골'이라는 단어는 원래 '무당'의 의미었습니다. 특히 호남 지역의 세습 무당을 '단골', '당골', '단골레', '당골레'라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무당과 신도의 상호 호칭으로 보기도 하였는데, 무당 입장에서 신도를 단골이라하고, 신도는 무당을 단골무라 했다는 것입니다.'늘 정해 놓고 찾는 무당' 이라는 '단골'은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늘 찾는 사람'의 의미로 쓰다가 '늘 찾아 오는 사람'으로 의미가 확대되어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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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요즘 고려 거란전쟁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동 6주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서희의 담판으로 획득한 지역입니다. 강동 6주는 압록강 동쪽의 6주로 흥화진, 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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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엽전은 어떻게 발행되고 관리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시대 동전을 발행하고 관리조선시대는 오늘날 한국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상평통보를 창안한 숙종 시기, 국가는 상평청을 새로이 만들고 동전의 주조를 호조와 상평청에서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이유로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우선 조선은 조세의 수취가 한 곳에서 이루어 지지 않고 각 부처마다 수취처를 따로 관리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동전의 발행 역시 한 곳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할 동기가 적었습니다. 또한 자주 발생한 흉년 등으로 동전의 수요 역시 중앙이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이러한 이유로 상평통보의 발행처는 호조, 상평청, 진휼청, 정초청, 어영청, 사복시, 훈련도감 등 중앙 7개 기관을 비롯하여 각 지방 감영으로 여러 기관에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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